[지방이 경쟁력이다] 구례군 야생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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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화가 지천에 널려있는 지리산 노고단 능선에 활짝 핀 산오이풀. 철마다 다양한 야생화를 구경할 수 있다. 노고단=양광삼 기자

▶ 전남 구례군 농업기술센터가 각종 야생화를 이용해 제작한 팔찌.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전남 구례군. 인구(3만여명)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곳이 지난달 10일 과학기술부로부터 과학기술 혁신사업 중 한 분야를 따냈다. 바로 지리산 야생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08년까지 매년 12억원씩 60억원(국비 30억원 포함)이 투입된다.

야생화의 유전형질과 기능 등을 연구해 대량생산의 길을 트고, 기능성 식품.의약품.화장품.과자 등을 만들어 신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다.

연간 30억~40억원 매출

순천대 송원섭(47.원예학)교수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해 왔던 야생화 연구 및 상품화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부가가치가 큰 상품으로 개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절로 피고 지던 이름없는 잡초에 불과하던 야생화가 지역 주민의 주소득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롭게 꽃을 피우고 있다.

◆ '돈꽃'으로 변한 야생화=지리산은 한반도 자생식물의 30%인 1323종이 서식하는 야생화의 보고(寶庫). 지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기술개발담당 정연권(47)씨는 "산을 오르내리며 무심코 지나쳤던 꽃 하나, 풀 한 포기가 언제부턴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1988년부터 차례로 용담꽃.둥굴레.옥잠화를 재배하고, 꽃.뿌리 등을 관상.약용으로 채취했다. 그리고 분재 전문가 등을 찾아다니며 야생화를 화분에 얹어 적응시키는 기술을 배워 정리했다.

96년부터는 농업기술센터에 육묘장.온실 등이 갖춰져 경제성이 있는 종들의 묘를 대량 번식, 농민에게 재배 기술과 함께 보급했다. 야생화를 대규모로 기르는 농가만도 현재는 여섯가구로 늘었고, 총 재배 면적은 4만5000평에 이른다. 이들 농가는 야생화 묘를 조경용이나 관상용 등으로 공급, 연간 총 30억~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야생화 농장들은 지역주민 200여명을 일꾼으로 써 고용 창출(연인원 3만명) 및 농외 소득 증대(연 8억원)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이들 농장은 98년 농업기술센터.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삼각 협약을 맺어, 서로 재배기술.시장 정보와 종자.묘 등을 교환하는 한편 지리산 생태 복원에 협력하고 있다.

◆ 다양한 볼거리=지난달 29일 구례군의 남쪽에 자리한 농업기술센터(옛 농촌지도소) 정문 앞 야생화 전시관. 가족단위와 단체 방문객이 야생화를 보기 위해 줄을 이었다.

센터 정문 앞에 있는 국내 유일의 야생화 전시관에 들어가 보니 갖가지 식물의 표본과 컬러 꽃 사진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압화(壓花.말리고 누른 꽃과 잎.줄기.뿌리.열매 등으로 만든 그림)와 액세서리.생활소품들은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센터 안도 야외 식물원을 연상시킨다. 고추.가지.깨 등 익숙한 채소들을 심은 전통작물원과 특유의 냄새를 가진 것들을 모아 놓은 향(香)식물원, 각종 연꽃들을 심은 연못 등 쏠쏠한 볼거리가 많았다.

분재.압화.향수 등 개발

구례가 지리산과 섬진강의 경치를 구경하며 단순히 먹고 놀다 가는 관광지에서 야생화로 유명해지면서 체험학습 형태의 문화관광지로 변하고 있다.

박종산(57)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야생화 체험학습장이 전국적으로 소문 나 지난 한 해만도 무려 15만여명이 다녀가는 등 관광객 유치에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문화.캐릭터 상품으로 개발=구례군의 야생화 산업은 97년 옥잠화.원추리 꽃 향기를 이용한 향수 '노고단'이 나오면서 보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녹차.감국 잎 등을 활용, 태우면 악취.곰팡이가 없어지고 목욕.세수 물에 담가 사용하면 피부 미용에 좋은 향 '구례소리'를 만들어 냈다. 2002년에는 녹차 향수 '소지'(小地)를 출시했다. 이들 제품은 지금까지 총 5억원어치가 팔려 군에 3000여만원의 로열티 수입을 안겨줬다.

'체험학습 + 관광지' 각광

야생화 전시관에서는 또 꽃 등을 붙인 뒤 투명 합성수지로 칠한 액세서리와 찻잔.접시 같은 생활소품 등을 시험 제작 중이다. 이들 캐릭터 상품은 전시관 옆 1만여평에 자연생태타운을 조성할 때 판매장을 갖춘 뒤 본격 생산된다.

구례군은 압화 부문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전국의 압화 동호인은 3만여명. 이들은 소재를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한 것을 쓰거나, 번거롭게 직접 채취해 말려 쓰고 있다. 구례군은 값싼 일손으로 각종 식물의 꽃.잎.열매.뿌리 등을 따 말려 진공 포장한 뒤 팔기 위해 시험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02년부터는 전국 유일의 압화 공모전을 열어, 압화 동호인들을 구례로 불러들이고 있다. 지난 4월 보름간 열린 압화 공모전 및 국제 교류전에는 일본.대만 전문가 60여명을 포함해 6만3000여명이 몰렸다.

전경태 구례군수는 "야생화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지역 홍보까지 감안할 경우 연간 100억원을 넘는다"고 말했다.

구례=이해석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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