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멋·져 라면 ‘계백’인들 어떠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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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16면

골프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업무상 골프를 하긴 해야겠는데 연습할 시간도 없고 따로 배울 엄두도 안 나고…. 게다가 필드에 자주 나가면 애들과 놀아줄 시간도 줄지 않겠어요.”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82>

최근 골프 의류업체의 여성팀장 A가 정색을 하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몇 달 전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연습장에서 똑딱 볼만 치는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 드라이버를 쳐 봤는데 잘 맞아봤자 150야드도 안 나가요. 게다가 제대로 맞히는 건 열 번에 한 번이나 될까. 솔직히 말하면 도대체 재미도 없고 힘만 드는 이런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거리도 안 나는 데다 공도 제대로 맞히지 못하면 골프라는 운동이 재미있을 리 없다. A의 말처럼 골프는 무척 무미건조한 게임이다. 어른 서너 명이 모이면 300m가 넘는 거리에서 자치기를 하다가 지름이 겨우 10㎝를 넘는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극히 단순한 운동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자전거 타기는 일단 한 번 배워두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지만 골프는 그렇지 않다. 한동안 잘 맞는가 싶다가도 조금이라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어김없이 표가 나는 게 골프다. ‘쪼로’와 ‘뒤땅’ ‘토핑’으로 점철된 악몽의 라운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게다.

골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프로건, 아마추어건 싱글 골퍼건, 초보자건 마찬가지다. ‘골프를 잘해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스트레스의 강도는 더욱 세진다. 특히 A팀장처럼 골프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는 대부분 골프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샷거리가 짧은 이는 말할 것도 없다. 샷거리를 늘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더구나 근력이 약해 드라이버를 아무리 힘차게 휘둘러도 150야드를 넘기기 힘든 여성이라면 골프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다.

주말에 골프를 하려면 골프장 왕복 시간까지 합쳐 줄잡아 10시간은 잡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오가는 길이 막히면 12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다. 이것만으로 모자라 그린피와 캐디피 등으로 1인당 30만원을 넘게 내야 한다. 알토란 같은 ‘시간’에다 4인 가족이 외식을 하고도 남을 돈을 투자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런 운동은 당장 접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므로 골프를 제대로 즐기려면 스코어에 상관없이 마음 편하게 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에티켓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거리가 짧은 여성 골퍼라면 골프는 기본적으로 근육이 발달한 남성을 위한 스포츠라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얼마 전 신문 기사를 보니 요즘 젊은 스포츠 선수들은 ‘즐긴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쓰는 모양이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감독을 거치면서 운동 자체를 ‘즐기는’ 축구 선수들이 늘어났다는 거다. 아마추어 골퍼들도 골프를 즐길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계백장군(계속 백 타를 넘기는 골퍼)이면 어떤가. 남을 이기려고 애쓰기보다는 골프를 하면서 지인들과의 시간을 즐겨보자. 최근 골프장에서 ‘당신멋져’라는 구호가 유행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당당하고, 신나게, 멋지게, 져주며 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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