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읽기] 르네상스 시대 ‘넘버 2’의 처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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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궁정론
발데사르 카스틸
리오네 지음, 신승미 옮김
북스토리, 512쪽, 2만5000원

“궁정 신하는 자신이 모시는 군주가 사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즉시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페데리코) “통치자를 떠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 않던가요? 그 점에서 궁정의 신하들은 마치 철창에 갇힌 새나 마찬가지입니다.”(칼메타) “궁정 신하들은 전쟁에 처하거나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는 절대로 지도자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궁정을 떠나야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페데리코)(177쪽 요약)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썼다면, 16세기 초 이탈리아 귀족 가문 출신의 카스틸리오네는 『궁정론』을 남겼다. 『군주론』이 군주의 통치기술이라면, 『궁정론』은 이상적인 궁정 신하의 덕목과 처세론이다. 신통한 점 하나-. 다른 문화권, 그것도 ‘임진왜란 이전’의 오래전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크게 낯설지 않다. 책 서술방식의 탄력성도 한 몫 한다. 대화체 방식이다. 1507년 3월 나흘 저녁 동안 신사와 귀부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상했는데, 이런 대화록에는 궁정윤리만이 아니라 중세 기사도 정신과 당시 인본주의자들의 염원도 일정하게 반영돼 있다. 은근히 유머와 풍자도 깃들어있어 독자들은 옛 서양 귀족들의 토론 현장을 참관 내지 귀동냥하는 생동감마저 느낄 수 있다. 왜 이런 책이 16세기 유럽에 느닷없이 등장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카스틸리오네의 동료였다. 그들은 궁정 신하를 전사이자 학자, 고전적 의미의 영웅이라는 전인적 인간형으로 규정한다. 즉 중세의 가치관이 해이해진 와중에서 새로운 신하론, 넘버 투의 윤리관이 절실했을 것이다. 즉 위대한 군주 뒤에는 위대한 궁정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책은 이상적인 궁정인의 상과 함께 권력 질서를 구축하는 인간 행위의 최고 보편 법칙까지 일부 제시한다. 한마디로 만토바·밀라노 등지의 이탈리아 궁정에서 일했던 르네상스의 외교관 출신인 지은이의 경험과 사유가 바탕이 된 처세술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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