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치 새바람] 하. 남은 과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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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 정치개혁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적지않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말 나카지마 요지로(中島洋次郞.39) 자민당 의원의 정치자금 유용 사건. 그는 1천여만엔의 정당교부금으로 차량을 사는 등 개인생활비로 써오다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검찰조사 결과 나카지마는 가짜 영수증을 끊어 허위 자금보고서를 제출했고 이름뿐인 정책비서를 두고 그 월급마저 챙겼다.

나카지마는 의원직을 자진 사퇴했지만 도쿄(東京)지법은 올해 2월 그에게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 라며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법원의 중형선고는 정치개혁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던 정당교부금 제도가 정치인의 '지갑' 만 하나 더 늘려준 꼴로 전락된 데 대한 국민적 분노와도 무관하지 않다.

정당교부금은 94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총리가 '건전한 민주주의 비용' 이라며 도입한 제도. '좋은 정치.깨끗한 정치' 를 하라며 국민 1인당 25엔씩 납부한 세금으로 재원이 충당된다. 올해는 3백14억엔이 조성돼 자민당의 경우 지역구 의원한테 1천만엔씩을 나눠주고 있다.

그러나 정책조사.당 홍보에 사용한다는 당초 취지는 퇴색되고 나카지마처럼 개인적 용도로 빼내 쓰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 아사히(朝日)신문은 나카지마 사건이 드러나자 "혈세로 운영되는 정당교부금 제도가 정계를 정화시키기는커녕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는 독자투고를 실었다.

시민단체들도 정당교부금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인건비에 대해서도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정치개혁 차원에서 도입된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도도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96년 이 제도에 따라 첫 선거가 실시된 후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당초 중선거구제에서 '돈 안드는 선거' 를 명분으로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로 방향을 틀었지만 히구치 미치코 전 도요(東洋)대 교수는 "오히려 선거전이 가열돼 선거 비용만 더 늘어났다" 고 지적했다.

득표율과 획득의석 비율의 괴리도 도마에 올랐다. 96년 총선에서 소선거구의 경우 자민당은 38.6%의 득표율로 무려 56.3%의 의석을 획득했다. 반면 민주당은 10.6%의 득표를 올렸지만 의석수는 5.7%에 불과했다.

특히 12.6%의 득표율을 자랑한 공산당은 0.7%의 의석확보에 그쳤다. 이시카와 마스미(石川眞澄)니가타(新潟)국제정보대 교수는 "현 제도는 다수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민의를 왜곡시키고 있다" 고 혹평한다. 전문가들은 도시와 농촌 선거구간 최대 인구격차가 2.14배나 되는 것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의 동시 입후보가 허용됨에 따라 '선량 등급론' 도 폐단의 하나로 꼽힌다.

말하자면 국회의원 사이에도 금.은.동메달 의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선거구에서 당선되면 금메달, 비례대표 단독출마로 당선되면 은메달, 소선거구에서 낙선한 뒤 비례대표 당선으로 구제받은 의원들은 동메달 의원이라며 당정 인사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 선거제도의 개혁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정당들 사이에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타협점을 찾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무원 수가 삭감된 만큼 국회의석도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연립여당은 소선거구의 골격에는 손대지 않은 채 비례대표 의석만 20석 줄이기로 했다.

또 법정득표율에 못미쳐 공탁금을 몰수당한 후보는 비례대표에서 당선되더라도 자격을 박탈하고, 현직의원이 소선거구의 보궐선거나 재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선량등급론' 의 부작용을 보완키로 했다.

일본은 2001년부터 여당 의원이 중앙부처 부(副)대신.정무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당의 권한은 세지는 반면 야당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야당의 입법능력 강화가 절실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자민당)중의원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자민당 일각에서도 "야당의 입법.조사능력 강화를 위한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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