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쿠바의 '악연'] 소련 핵미사일 설치때 긴장 최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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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쿠바는 59년 카스트로가 공산혁명으로 집권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뒷마당' 쯤으로 여겨져 왔다. 수도 아바나는 미국 휴양객들로 흥청거렸으며, 쿠바산 설탕과 시가는 미국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러나 공산화 이후 약 20억달러에 이르는 쿠바 내 미국 자산이 징발당하면서부터 양국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미국은 제당수입 쿼터를 축소하면서 경제적 보복에 들어갔으며 쿠바는 소련 및 동구 국가와의 경제 유대로 맞섰다.

결국 61년 1월 양국의 외교관계는 단절됐고, 같은 해 4월엔 1천4백명의 쿠바인 추방자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바 공격을 시도하다 실패한 피그스만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쿠바의 군사적 긴장도가 가장 높았던 때는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 설치된 62년. 케네디 미 대통령은 쿠바 봉쇄령을 선언하면서 해병대 4만명과 육군 10만명을 플로리다에 집결시키는 등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으나, 막판 흐루시초프의 굴복으로 파국을 비껴갔다.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 75년 쿠바의 앙골라 사태 개입, 잇따른 항공기 납치, 쿠바 탈출민 문제 등으로 꼬여만 가던 양국관계는 소련 해체 이후 쿠바의 개방노선 전환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96년 쿠바가 쿠바계 미국인을 태운 비행기를 격추한 사건으로 제재조치가 강화되는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양국은 민간인 접촉 확대 등으로 계속해 화해사인을 교환해왔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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