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정국 새국면] 이종찬호 좌초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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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론장악 문건' 파동의 한 주역인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가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회의가 그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잦은 말바꾸기로 의혹을 자초한다" 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국가정보원 문건 반출' 사건까지 터지자 도마뱀 꼬리 자르듯 '절연(絶緣)' 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당 일각에서는 동교동계 중심의 당내 구(舊)주류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李부총재 중심의 신(新)주류에 대반격을 가하는 '주도권 싸움' 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특히 동교동계 당직자 등 당내 구주류들이 일제히 李부총재 비판에 나선 대목은 눈에 띄는 흐름이다.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2일 고위 당직자 회의 직후 '문건 유출' 논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걸 왜 논의하느냐. 李부총재 개인의 일일뿐 당은 관심없다" 고 정색했다.

李부총재가 개인 차원에서 책임지라는 뜻인 듯하다.

여권 내에서는 심지어 '문건 유출' 파장을 막기 위해 최악의 경우 李부총재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이며, 그 전단계로 李부총재가 검찰 혹은 국정원의 직접조사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2일 돌연 대구로 지방강연을 떠난 李부총재에 대한 성토도 적지 않았다. 한 당직자는 "국정원이 李부총재 요청으로 1일 밤 보안점검을 한 사실도 신문을 보고 알았다" 며 " '자신있으니 맡겨달라' 던 李부총재로부터 계속 뒤통수를 맞는 기분" 이라고 씁쓸해 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李부총재는 과거 베이징(北京)에서 DJ의 '20억+α(92년 대선에서 당시 盧泰愚대통령으로부터 DJ에게 전달된 정치자금)' 고백을 하게 했던 주역" 이라며 "문건 유출 고백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선제 폭로를 방어하려다 나온 큰 실수" 라고 가세했다.

당에서는 이미 공식회의에서 '李부총재 문제 함구령' 을 내렸다. 그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다.

문일현씨 녹취록 존재 여부에 대한 오락가락 발언, 국정원 문건 유출에서 드러난 위기관리의 미숙함 때문에 계속 감싸안고 가다가는 여권 전체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李부총재측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여의도의 李부총재 사무실에서는 2일 정오 직후 비서관.여직원들이 일제히 철수, 李부총재가 조만간 사무실을 폐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 전반기의 깊숙한 정보를 쥐고 있는 李부총재를 자를 경우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 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어 'JC처리' 가 정국의 태풍의 눈이 될 전망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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