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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10월 깜짝쇼' 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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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재선을 노리던 미국의 현직 대통령들은 종종 선거일인 11월 2일을 앞두고 깜짝쇼를 벌여왔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백악관이 대선 승리를 위해 오는 10월께 모종의 사태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만일 깜짝쇼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중동의 이란 문제가 될 공산이 있다.

깜짝쇼를 준비하는 워싱턴 위정자들이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이 있다. 테러위협이라는 카드의 약발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유권자들은 정부가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내놓은 테러경고에 대해서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동 위기는 어떨까? 얼른 생각할 때 이라크 사태라는 늪에 빠져 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새로운 중동위기를 반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문제는 찬찬히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선 미 군부 입장에서 보면 10대 소년들이 대전차 로켓포나 자살 폭탄 공격을 가해 오는 작금의 혼미한 상황보다는 본격적인 전쟁이 차라리 낫다.

이란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워싱턴과 테헤란 간의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과거 중동정책을 담당했던 미국의 전직 관리들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자신의 실책을 변명하기 위해서는 이란을 물고 들어가는 편이 손쉬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지원하는 이라크 임시정부는 나자프를 비롯한 이라크 전역에서 시아파의 저항과 봉기에 직면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 문제를 시아파의 총본산격인 이란을 비난함으로써 이란으로 정치적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중동위기 시나리오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도 포함하고 있다. 이란의 핵개발 수준과 내용은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강경파들은 이란이 비밀리에 군사용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란의 핵개발 문제가 점차 워싱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네오콘의 대부격인 노먼 포드 호레츠(전 코멘터리 편집장)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는 현단계에서 이란 침공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란 침공이 당장 이뤄질 눈치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언급한 문제의 이란 침공 '단계'는 조만간 올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당초 이스라엘의 기대와는 180도 다른 결과를 낳았다. 당초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것은 사담 후세인 제거와 친미정권 수립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사담 후세인의 군사력은 분쇄됐으나 기대했던 친미정권 수립은 아직 멀었다. 더욱이 이란의 입지가 강화됐다. 이란은 미국의 손을 빌려 자신들의 숙적인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셈이 됐다. 게다가 이라크 인구의 60%는 시아파다. 따라서 이라크 시아파들은 자연 시아파의 종가(宗家)격인 이란의 영향권에 포함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원하는 그림이 전혀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이란 핵시설에 대한 기습공격 시나리오를 완성해 놓은 상태다. 이 작전을 실행하려면 워싱턴의 승낙이 필요하다. 당연히 이 승낙은 부시 대통령 재임 중에 받아내는 편이 수월하다. 이스라엘은 최근 자국의 핵시설 인근 주민들에게 화생방전에 대비한 보호장구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미국으로부터 공격 승낙을 받아내기 위한 이스라엘 특유의 외교공세로 보인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네오콘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그 핵심은 모든 사회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동경하고 있으며 미국은 민주주의를 전파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를 확산할 경우 세상은 한결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재자 제거는 미국의 의무이기도 하다. 어쩐지 이 얘기는 전에 들어본 얘기 같지 않은가? 이것은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앞서 우리가 신물나도록 들었던 바로 그 전쟁 전주곡이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