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피플] USA투데이 티머너스 기자, 시각장애 딛고 퀴즈대회 5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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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인간의 의지로 극복하지 못할 장애는 없다-. 이같은 명제를 여실히 증명해보인 한 시각장애인이 요즘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부르고 있다.

미 유력 일간지 USA투데이의 스포츠 기자인 에디 티머너스(31)는 25, 26일 미 전역에 녹화방송된 ABC-TV의 유명 퀴즈프로그램 '제퍼디' 에서 쟁쟁한 경쟁자 5명을 연속으로 물리치고 내년 봄 퀴즈왕 결정전 진출권을 따냈다.

2세때 망막 종양으로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잃은 그는 16년 방송 역사를 자랑하는 '제퍼디' 에 출전한 최초의 시각장애인이다.

퀴즈쇼 제작진은 그에게 점자로 된 문제유형표를 주고 마지막 써내기 코너에서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말고는 일절 배려하지 않았다.

다른 출연자에 비해 불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티머너스는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고 말했다.

퀴즈쇼 우승 사실보다 더욱 빛을 발한 것은 시련을 극복해가는 티머너스의 불굴의 의지였다.

이는 워싱턴포스트와 피플 등 유력 언론들이 앞다퉈 그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눈을 제거한 티머너스는 퇴원 후부터 스스로 장난감을 찾아 노는 등 현실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타고난 적극성에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그는 신체적 결함에 굴하지 않고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줄곧 정상인을 능가하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죽마고우인 데이비드 셰어(30)는 "중학교 시절 티머너스가 실내 야구연습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공치는 소리를 5~6번 정도 들은 뒤 기계가 던지는 시속 1백20㎞의 빠른 공을 방망이로 쳐냈다" 고 술회했다.

티머너스는 현재 청각을 중심으로 한 나머지 감각을 총동원, 미식축구공을 잡아낼 뿐만 아니라 비치발리볼을 즐기기도 한다.

그는 또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어 각종 스포츠 기록을 컴퓨터만큼 정확하게 기억해낸다. 8세때 관람한 경기들의 점수는 물론 플레이 내용과 경기중 발생한 일들을 지금도 기억할 정도다.

이를 발판으로 대학졸업 후 스포츠 기자가 된다. 현재 대학농구와 대학축구를 맡고 있는 그는 여느 기자와 똑같이 일한다. 텔레비전의 중계를 모니터하고 전화로 각지의 경기상황과 기록을 체크, 노트북 컴퓨터에 기록한 뒤 기사를 작성한다.

여느 기자와 다른 것은 그가 컴퓨터 화면을 보지 않고 음성재생기를 부착한 이어폰으로 듣는다는 점뿐이다.

직접 경기장을 찾아 취재해야 할 중요한 경기는 방송기자 출신인 아버지가 따라가 현장상황을 중계해준다.

USA투데이의 동료기자들은 "티머너스는 정상인과 같거나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으며 우리와 비슷한 정도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티머너스는 퀴즈 연승으로 이미 7만달러(8천4백만원)의 상금과 자동차 2대를 탔다. 정상인과 능력 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목이 집중되는 게 다소 불만인 티머너스는 그러나 부상으로 탄 자동차를 놓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10년 된 일제차를 모는 부모님께 한대를 선물하고 나머지 한대는 팔겠다" 며 멋쩍게 웃었다.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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