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도 부총리도 이공계, 획기적 정책 변화 예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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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22면

“이렇게 졸속적으로 추가경정예산 가운데 2700억 엔(약 3조5000억원)을 첨단과학기술에 배정한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과학기술 정책을 약화시키려는 게 아니라 심사와 평가가 소홀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일단 700억 엔을 깎되, 배정도 젊은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들에게 많이 해야 한다.” 민주당이 이끄는 새 일본 정부의 칼바람이 심상치 않다. 아소 다로 정권 말기에 책정한 수조 엔의 추경예산을 난도질하고 있다. 과학기술예산은 칼질의 강도가 덜한 편이지만 간단치는 않다. 과학기술 정책에 큰 변화가 예고되건만 일본 과학기술계가 겁내거나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왜 그럴까.

국가 과학기술 리더십의 길 2 日 하토야마

하토야마 정부는 관료주의 타파에 승부를 걸었다. 일본이 발전하려면 정치가 관료를 리드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하토야마 신임 총리가 맨 처음 한 일은 지난 10년 가까이 자민당 정권이 유지해 온 총리실(내각실) 산하의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일거에 없앤 것이다. 총리가 의장을 맡은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주요 장관과 민간 대표로 구성된 상설 조직으로 예산·금융·재정 등 일본 경제의 큰 틀을 짜는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그래도 10년 전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전후 일본 경제 부흥을 책임졌던 대장성과 경제기획청을 재무성과 금융청으로 쪼그라뜨리면서 만든 신흥조직이었다. 고이즈미 정부 5년 동안은 경제재정자문회의가 개혁의 선봉장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정부는 자문회의가 여전히 관료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며 아예 폐지한 것이다. 대신 국가전략실과 행정쇄신회의를 신설했다. 국가전략국으로 곧 격상될 국가전략실은 새 정부의 최고 권력기관이다. 정권의 핵심인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가 부총리 겸 경제재정 및 과학기술담당 장관직을 맡으며 전략실을 운영한다. 과거 후생성(보건복지부에 해당) 장관을 지낸 그는 관료개혁을 평생의 정치과업으로 삼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와는 이 점에서 생각이 꼭 같다. 그는 “일본은 의원내각제인데 실제는 관료내각제가 됐다”며 국가 정책의 정치 반환을 주장한다. 행정쇄신회의의 권한도 막강하다. 철저한 예산관리와 주요 사업의 단수연도제 폐해를 줄이는 게 주업무다. 관방장관은 청와대 비서실장 격으로 당과 의회의 다리 역할을 한다. 국가전략실·행정쇄신회의·관방장관이 하토야마 정권의 3각 축이다.

이런 가운데 과학기술계가 주목하는 것은 하토야마 총리와 간 나오토 부총리가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과학기술 정책의 양대 산맥인 문부과학성과 경제산업성 장관도 이공계 출신이다. 국회(중의원) 과학기술상임위원회 위원장도 옛 과학기술청 장관을 지낸 민주당 소속 거물 여성 정치인이다. 특히 부총리는 지난 정부 때 총리실 산하 종합과학기술회의(과학기술 정책 최고결정기관으로 총리가 의장)의 간사를 맡았던 과학기술 정책 담당 장관을 겸하고 있다. 국가의 돈과 과학기술을 양손에 거머쥔 셈이다.

과학기술 관련 핵심 부처 및 조직에 이공계 정치인이 대거 포진한 데 대해 과학기술계에선 이들이 너무 많이 알아 오히려 견제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매년 예산 투쟁을 하고 정책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됐다고 환영하는 측도 있다. 여하튼 새 정부가 변화의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과학기술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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