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인문학이 시들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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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대학에서는 학문을 하는 학생들의 차분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전자.컴퓨터공학이나 지식.정보화 분야처럼 취업과 관련된 학문 분야는 수업마다 학생들이 넘쳐나서 선 채로 강의를 들어야 할 정도다.

반면 철학이나 역사학 같은 인문학 강의에는 학생이 별로 없어 민망할 정도다. 이러한 실용학문 편중 현상은 학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에서 더욱 심하고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어 학부에서도 학생들은 제2외국어는 도외시하고 영어쪽으로 몰려드는 추세다. 영어를 기본언어로 한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실용적인 측면을 취하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지구촌에는 영어 이외에 프랑스어.스페인어.독일어같이 다른 외국어를 사용하는 주요 문화권들도 있음을 인식하고 학생들이 균형감각을 갖춰주었으면 한다.

특히 문제의 핵심은 요즘 학생들이 너무 계산적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영문과 안에서도 취직과 관련있는 실용영어 과목에는 열성을 갖고 참여하나 실용성과 별로 관련이 없는 시(詩).고전문학.현대문학 수업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시 낭독이나 문학작품 읽기 등과 같이 예전에는 활동이 왕성했던 학생클럽들도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만화책을 열심히 읽는 학생들은 눈에 많이 띈다.

소위 'N세대' 라고 불리는 학생들은 모이기만 하면 만화책이나 컴퓨터게임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늘날 달라진 대학의 풍속도다.

이런 학생들에게서 상아탑만이 풍기는 학구적인 면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얼마 전 오랜만에 미국 하와이대 교정에 들렀을 때 학생들의 게시판을 본 적이 있다.

게시판에는 학생이 주체가 된 시낭독 모임의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상당수 붙어 있었다. 첨단기술이 발달한 미국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변함없이 학구적인 면도 갈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60년대 유학시절 나는 이와 같은 안내문을 보고 열심히 시낭독회를 따라다녔다. 그 당시 애청했던 시들은 아직도 내마음 속에 남아 삶이 어렵고 고달프게 느껴질 때마다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줬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중.고교 시절부터 많은 양의 고전이나 문학작품을 읽게 한다. 대학에서도 문학부.상경계.이공계 전공을 따지지 않는다. 모든 교수과정이 학제적으로 연계가 잘 돼있어 많은 양의 폭넓은 독서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고교에서 문학작품을 읽는 습관을 길러주지 않고 독서에 대한 방법론만을 가르치는 데 그치고 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학생들은 독서습관이 길들여져 있지 않아 만화책이나 컴퓨터게임 또는 음란사이트 같은 자극적인 것에 쉽게 중독되고 만다.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당장 직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인생의 진수를 터득하는 첩경(捷徑)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약동하는 생을 발견하고 한 차원 높은 삶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젊은이들은 선진국의 학문과 기술을 터득하기를 원하기만 했지 선진화된 나라들의 '인격 함양을 위한 교육' 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목적을 위해 무미건조하게 달리는 사람보다는 지식과 인격을 두루 갖춘 균형잡힌 사람이 21세기를 주도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박명석<단국대 영문학과 교수.세계 커뮤니케이션 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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