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회고록 2권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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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돼 30여년간 가톨릭 교회와 험난한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는 김수환(金壽煥, 77)추기경.

그가 18일 회고록 색채가 짙은 명상록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과 신앙고백록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를 도서출판 사람과사람에서 동시에 펴냈다.

金추기경은 여기서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전두환씨, 교황청 대사, 주한미국대사, 주한미군사령관과 접촉하는 등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특히 신군부에 대해 독자적으로 강경한 항의성명을 발표하려 했으나 학생, 노동자를 충동해 돌이킬 수 없는 유혈사태를 유발할까봐 몇번 기안하다가 버렸다고 회고하고 있다.

예수와 닮은 삶을 살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 이웃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살지 못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는 진솔한 고백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또 격동의 70-80년대 서울대교구장으로서 '민주화 운동의 성지' 명동성당을 지켜내던 시대적 양심으로서의 뒷얘기도 곳곳에 들어 있어 관심을 끈다.

71년도 성탄미사강론을 통해, 또 72년 8.15 때 시국성명을 통해 박정희 체제를 비판한 때문에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성모병원이 세무사찰을 받기도 했다고 金추기경은 밝히고 있다.

87년 6.10 민주항쟁 때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당국에 맞섰던 일화도 술회했다.

추기경으로서 이런 괴로운 시대를 헤쳐내기가 힘들어 몇번이고 교황에게 사표를 내는 편지를 쓰다 찢곤했다. 그럴 때마다 "교회(사제)는 참으로 이런 시대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 또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의 기도로 지탱해왔다고 金추기경은 회고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교구장에서 물러난 金추기경은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주교관에 머무르고 있다.

"주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각박합니다. 위기의식이, 불안이, 체념이, 허탈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권력의 절벽, 무섭게 공허한 침묵의 심연, 칠흑 같은 불신의 장막. 이 장막을 벗길 빛은 없습니까? 저 절벽과 심연을 이을 믿음의 다리는 없습니까?"라는 끝없는 물음으로 사회와 사람을 위한 기도를 올리며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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