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환경운동가 부부 안영철·정효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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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제는 고춧가루나 참기름을 함부로 못쓰겠어요. "

올 봄에 귀농해 첫 가을걷이를 한 정효숙(鄭孝淑.33)씨의 소감이다. 종전에는 김치를 담을 때 고춧가루를 아낌없이 썼으나 새내기 농군으로 흙을 밟아보고 땡볕에 일하는 고통을 겪은 뒤부터는 '짠순이' 가 됐다.

鄭씨와 남편 안영철(安泳喆.33)씨는 21세기판 '브나로드 운동' (농민 속으로)을 꿈꾸고 농촌에 내려온 '젊은 피' .서울.인천 출신인 이들은 결혼 전부터 의기투합해 부모를 설득하고 귀농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많은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지난 4월17일 결혼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로 내려와 살림을 시작했다.

귀농지로 금산을 택한 이유는 결혼 전에 일해오던 녹색연합이 산림청.금산군과 협력해 새로운 산촌개발의 시범지역으로 추진했기 때문.

처음 내려와서는 서툴기 그지없었다. 경작할 땅도 재배할 종목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가게 아저씨가 빌려준 고추밭, 큰집 할머니가 나눠준 땅콩밭 등 1백평여 밭에 23종의 작물을 주민 '선생님' 들로부터 개인지도 받으며 소꿉장난하듯 지었다.

동네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나 주민 평균연령이 60세 이상인 건천리에서 이들은 '막내' 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른들은 막내가 좋아한다고 남몰래 누룽지도 갖다주며 이들을 챙겼다.

명절 때 서울로 떠나면 동네어른들이 자식들 보내는 것처럼 아쉬워한다.

安씨 부부가 귀농한 이유는 새 천년의 삶터로 산촌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시골 하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데 인정이 흐르고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농촌이야말로 사람이 살 곳이라고 생각해 내린 결단이다.

첫해인 올해 가계부는 쓴 데는 많고 번것은 없는 적자. 하지만 동네 어른들로부터 받은 후덕한 인심과 어엿한 이웃으로 인정받은 것은 가계부에 기록할 수 없는 흑자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이들에 이어 산촌개발에 뜻을 둔 몇 가정이 합류 의사를 밝혀왔다.

연말쯤에는 4, 5가구가 더 내려올 예정. 이들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임대하고 주위의 산을 개발해 5년 예정으로 친환경적인 산촌으로 개발하고 도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가장 아쉬운게 '사람' 입니다. 농촌이 죽으면 도시도 죽는데 젊은 사람들이 시골을 살리는데 동참했으면 합니다. 5년뒤 농촌은 더 이상 소외된 지역이 아닙니다" 라고 安씨 부부는 입을 모은다. 연락처 0412-752-9652.

금산〓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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