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만난 DJ-YS 서로 눈길 안주고 어색한 악수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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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이 16일 부마(釜馬)항쟁 20주년을 맞아 부산에서 열린 '민주공원' 개원식에서 만났다.

주최측은 두 사람이 행사장 동쪽(YS)과 서쪽(DJ)에서 동시에 입장하도록 했다. 동서화합을 상징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이날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보다 훨씬 차가웠다. 40여분간의 행사 도중 서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먼저 축사를 시작한 YS는 DJ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그는 "지금이 3공인가, 5공인가" 라고 반문한 뒤 "민주투사들이 사이비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을 흘린 것이냐" 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내년 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부정.타락선거가 될 것" 이라며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날 것"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DJ는 먼산을 바라보며 외면했지만 독설은 계속됐다. "70년대를 방불케 하는 상태" "하늘과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 이라고도 했다. 행사장 밖에선 "김영삼" 을 연호하는 소리가 나왔다.

YS가 당초 준비한 원고엔 "독재국가" 라는 표현도 있었다. 불법 도.감청, 계좌추적, 중상모략, 사생활 감시 등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중앙일보에 대한 언론탄압도 언급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 대목은 거센 바람 때문에 원고 두 장이 한꺼번에 넘겨지는 바람에 읽지 못했다. 곧이어 치사에 나선 DJ는 YS를 치켜세웠다.

그는 "지난 79년 당시 부산과 마산, 전국민의 궐기에 크게 기여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를 여러분과 같이 높이 찬양한다" 고 YS의 민주화 공로를 강조했다.

'존경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어 "부산은 나라가 위난에 처할 때마다 구국의 기치를 높이 든 애국과 충절의 고향"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우리들의 성지" 라며 부산 민심에 호소했다.

하지만 YS는 박수 한 번 치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다가온 DJ를 YS가 외면하자 DJ는 어색한 듯 웃으며 YS의 팔을 쳐 악수를 청했다. 의례적 악수가 이뤄졌지만 인사말조차 나누지 않았다.

YS는 이어 자갈치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한.일 어업협정 체결로 독도의 영유권을 내주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 라며 "영토를 양보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 고 하루종일 DJ를 비난했다.

DJ는 이날 낮 부산 상공회의소에서 지역 인사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삼성차 빅딜 내막을 공개했다.

그는 "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이 찾아와 '매달 1천억원씩 적자가 나니 정리하게 해달라' 고 부탁했다" 고 전했다.

YS가 전날인 15일 "정치보복으로 삼성차를 망하는 대우차에 넘겼다" 고 발언한 데 대한 반박 겸 해명이었다.

부산〓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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