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뉴라운드 무신경…UR악몽 벌써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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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라운드 협상에서 만족할 만한 협상 결과를 얻어내려면 부처간 원활한 정책조정을 통한 정부차원의 통일된 전략 수립이 급선무다.

상당부분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협상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대응책이 아쉬운 상황에서 협상 주도권을 놓고 비춰지기 시작한 부처간 파열음과 국가 전체적으로 여과되지 않은 주장을 접고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협상 전략을 짜야 한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바람에 휩쓸릴 경우 협상 전략이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갈 수도 있다.

◇ 미흡한 정부 대처〓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끝난 고위급 회담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장 선언문 초안이 각국에 배포됐는데도 국내에는 12일에야 뒤늦게 알려진 것부터가 정부의 협상자세가 얼마나 안일한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철수(金喆壽.세종대 교수)전 WTO사무차장은 "UR 협상 당시 국내 여론을 환기시키지 못한 채 몇년을 허송하다 실리를 빼앗긴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며 무엇보다 정부의 입장 통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협상 전략을 주도할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무회의는 물론 주요 경제 각료간 협의체인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상시 참석하지 못해 부처간 의견 조정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농산물 협상 의제가 주된 내용인 의장 초안을 통보했던 주요국 고위급 회의에 농림부 직원이 빠졌으며, 해양수산부도 관련 국제.국내 회의에 자주 빠지는 데도 다른 부처에선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있다.

장원석(張原碩.단국대 교수)WTO 범국민연대 집행위원장은 "과거 협상과정을 보면 총론과 방향을 정하는 초기단계에선 별 문제가 없다가 각론으로 들어가면 부처간 이견이 노출돼 문제가 생겼다" 며 "외교통상부는 총론과 방향 등 전체적인 조정역할을 주로 하고 구체적인 각론은 산업별 특성에 맞도록 각 부처 담당자를 대표단에 합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지적했다.

張교수는 또 "다른 나라처럼 우리도 기업의 전문가와 비정부기구(NGO)대표를 협상대표단에 옵서버로 참여시켜 진행상황에 맞춰 의견을 조율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 전문인력 부족〓담당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제로 자리가 자주 바뀌는 데다 민간에서 영입한 전문가들도 1~2년 만에 자리를 떠나는 등 통상협상 전문가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번 협상을 관장하는 외무성 국제기관 1과의 경우 직원이 22명인 반면 한국의 협상창구인 통상교섭본부 WTO팀 직원은 8명에 불과하다.

농업분야만 하더라도 일본은 WTO.APEC 등 다자간 협상을 농림수산성의 차관급 심의관이 전담하면서 차관보.국장.5과장.4실장의 보좌를 받고 있다. 미국도 농무부 대외담당 차관이 해외농업처의 막강한 인력지원을 등에 업고 실무협상을 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을 중심으로 5개 실무지원팀(팀장 과장급)만 구성돼 있으며, 통상교섭본부도 서기관 1명이 농업분야 협상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 8월 농산물 협상을 전담할 차관보급 농업통상관을 설치하려다 기획예산처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해양수산부의 경우 무역진흥과가 실무를 맡고 있으나 WTO와 관련된 국제통상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이 전혀 없다. 그나마 한.일, 한.중 어업협정 실무작업만으로도 업무가 밀려 수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관련 자료와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가 벅차다는 것이 실무자의 고백이다.

이계영.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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