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예외조항 많아 겉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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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보화사회에 꼭 필요한 정부의 정보공개 정책이 겉돌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는 모두 공개한다' 는 목표 아래 지난해 1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을 발효시켰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 법은 모호한 예외조항이 너무 많아 일선 공무원들이 '비밀' '공익보호'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비공개를 일삼고 있다.

예컨대 '직무수행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한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 는 조항(7조2항)은 행정비밀주의의 도구가 돼버렸다. 여기에다 일선 공무원들의 무관심과 무성의가 어우러져 정보의 관리.모니터링.공개는 낙제점 수준이다.

지난 87년 '6.10 민주화 항쟁' 당시 가두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체포됐던 陰모(39.회사원)씨. 학생운동 경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 감안돼 검찰의 '기소유예' 조치로 풀려났다. 하지만 그 후 10여년 동안 '요주의 인물' 로 지목돼 경찰의 사찰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이 도대체 왜 사찰을 받았는지 영문이라도 알기 위해 검찰에 '보안사범 동향 파악지침' 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이 지침이 대외비(對外秘)로 분류돼 있다" 면서 거절했다.

陰씨는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비공개대상 정보는 반드시 법률에 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대외비로 분류해 공개치 않는 검찰의 월권" 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외비' 는 법률이 아니라 행정명령(대통령 훈령)에 의한 것이며, 비밀에 '준' 해 보관하도록만 명시돼 있다. 미국 정부는 개인정보에 대해 공개요청이 있으면 무엇을, 왜 수집했는지 반드시 알려준다.

아리송한 이유로 정보공개를 꺼리는 관행도 여전하다. 박명환(朴明煥.한나라당)의원은 7일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행정부의 1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의 납세실적을 공개하라" 고 요구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개별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과세정보가 공개되면 성실 납세풍토 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행 국세징수법에는 '국세 체납 관련 자료를 금융기관이 신용정보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은행연합회에 제공할 수 있다' 고 명시돼 있으나 국세청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실효없는 생색내기용 제도도 있다. 행정자치부는 올 초 지방공기업법을 손질하면서 주민들의 정보공개권을 끼워넣었다.

'관리자는 해당 지자체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20세 이상 주민 가운데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연대서명을 받아 결산서.재무제표 등을 요구할 때는 요구일로부터 10일 이내에 보내야 한다' 는 내용.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 비율을 2천5백분의1로 정했다. 서울시의 20세 이상 주민은 모두 7백30만여명선. 결국 관련 자료를 받으려면 2천9백여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모두 2만6천3백38건에 달하는 정보청구가 이뤄졌고, 이중 94.7%는 공개됐다" 고 자랑한다.

그러나 여기엔 선진국에서라면 굳이 정보공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데다 그나마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밀' 에 부치는 정보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숭실대 강경근(姜京根)교수는 "정보공개법은 만들었지만 정보공개는 걸음마 수준" 이라면서 "공공기록은 시민의 것이라는 인식 아래 정보관리 및 공개제도를 전면 수술해야 한다" 고 말했다.

기획취재팀〓박의준.박장희.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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