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숨기려 했다…한전측 공개지침 어기고 하루동안 보고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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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전력이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지난 4일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3일부터 예방정비 중이던 이 발전소 원전 3호기의 감속재 펌프실에서 중수(重水)가 누출된 것은 지난 4일 오후 7시10분쯤. 누출 직후 한전은 20여명의 인력을 5개조로 나눠 회수작업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작업인부 20명이 방사능에 피폭됐다.

작업 중이던 오후 8시20분부터 오후 9시37분까지 1시간17분 동안에는 펌프실의 방사능 오염을 알리는 '고방사선 경보(사이렌)' 까지 울렸다.

그러나 한전측은 과학기술부가 만든 '원전사고 정보 공개지침' 상 경보가 울리면 사고사실을 인터넷 등에 공개해야 하는데도 공개하지 않았다. 한전본사나 과기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자체 '발전과장 일지' 에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한전 본사는 경보가 울린 사실을 중수 회수작업이 끝난 5일 오전 3시쯤 인쇄된 알람 서머리(경보발령 요약집)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

사고사실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5일 오후 9시쯤. 한전이 아닌 한전의 감독기관인 과기부가 사고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면서부터다.

월성원전에 주재 중인 과학기술부 주재관(실장 강건기)이 사고를 하루 뒤인 5일 오후 5시20분쯤 알고 과기부에 보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과기부가 자체 판단,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한전은 퇴근시간인 5일 오후 6시 무렵부터 과기부 직원들과 공개여부를 놓고 협의했지만 비공개를 계속 주장했다.

월성원전 제2발전소 장경식(張敬植.53)부소장은 "법적 허용치에 훨씬 못 미치는 피폭량을 보여 보고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솔직히 최근 일본의 사고도 마음에 걸렸다. 당시에는 사고사실을 공개해 평지풍파를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한전은 5일 오후 10시에야 인터넷에 이 사고를 공개했다. 공개지침상에는 사고 다음날 오후 6시까지 공개하도록 돼 있다.

한편 월성원전측은 6일 원자로 격납건물내 감속재 펌프실에 대한 직원들의 출입을 통제,일주일 뒤 사고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원전측은 "펌프실내 공기중 삼중수소 농도가 6일 오전 현재 7MPCa로 평상시의1MPCa보다 높아 작업자를 들여보낼 수 없다" 고 밝혔다. 방사능에 피폭된 22명은 정상근무하고 있다.

경주〓황선윤 기자,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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