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도대체 누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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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야?
원제 Who Are They, Anyway?
B J 갤러거 외 지음, 홍대운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136쪽, 8500원

요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일대기를 극화한 드라마가 인기다. 그 중에서도 1940년 청년 정주영이 세운 자동차 정비공장 ‘아도서비스’가 화재로 전소되다시피 한 이후 그가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를 다룬 부분은 특히 감동적이다. 고관대작들의 자가용을 태워버린 데다 우수 엔지니어들마저 공장을 떠난 상황에서 그는 자신에게 닥칠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나갔다. 자동차 주인들에겐 신용을 걸어 보상을 약속했고 직원들에겐 반드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공장 가동 허가를 취소한 일본 경찰관을 집요하게 설득해 성공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가 얼마나 책임감 강한 사람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B J 갤러거와 스티브 벤추라가 개인과 기업이 갖는 책임감의 중요성을 화두로 삼아 쓴 『도대체 누구야?』는 기업 현장에서 경영자와 직원들이 벌이는 ‘네 탓이오’를 ‘비난하기 게임(blame game)’이라 명명하고, 이 게임에 빠져 있는 한 기업의 사례를 우화 형식으로 전해준다. 생산은 늘지 않고 매출은 나날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모두가 그 원인을 ‘그들’ 때문이라고 수군댄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일까? 이 책은 우화의 말미에서 그 원인의 중심에 ‘우리’ 혹은 ‘나 자신’이 서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바로 ‘나’라는 얘기다. 조직 구성원들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채 서로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통해 ‘책임감 실종 시대’의 직장인들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책임감의 개념 변화다. 과거의 책임감은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내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훈장 같은 낱말이었다. 맹목적인 충성도가 높은 사람, 시키는 대로 해내는 사람을 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불렀다. 이 책은 이런 수동적 개념의 책임감(responsibility)에서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개념의 책임감(accountability)으로 인식전환을 요구한다. 이는 기업의 경영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는 현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구성원 개인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판단하고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과거의 수동적인 책임감 개념은 당연히 그 시효가 끝났다.

개인의 경력개발 과정에서도 책임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일 수 없고 기회가 닿으면 이직을 시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책임감은 한 개인이 자기 가치를 증대하는 주요한 도구가 된다. 한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로 옮길 때 새로운 회사의 경영자나 인사 책임자가 전 직장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레퍼런스(reference) 체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때 전 직장의 상사들은 그 개인의 업무 전문성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언급하기보다 “그 사람, 책임감이 참 강한 사람입니다” 혹은 “매우 성실한 사람입니다”라는 표현을 더 앞세운다. 무슨 얘기인가. 직장인의 가치를 평가할 때 전문적인 업무 스킬보다 인성을 더 앞세우며, 인성 중에서도 특히 책임감 유무를 중요 잣대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자신을 책임형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10가지 삶의 키워드를 책임감 발현의 도구로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두 가지만 살펴보자. 저자들은 우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라’고 강조한다. 단기·중기·장기적 목표가 없는 삶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다. 정주영이 시련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한국 최고의 기업가가 되겠다는 장기 목표와, 경성 최고의 자동차 정비공장을 만들겠다는 단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 탓할 시간에 스스로 실행하라’는 지침도 기억할 만하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 걸핏하면 ‘그들’이라는 말을 섞어가며 남 탓을 하지는 않았는가. 이 책은 불평할 시간에 ‘우리’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더 빨리 문제 해결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안 되는 회사는 ‘도대체 누구 책임이야’를 따지다 끝나지만, 잘 되는 회사는 위기의 순간에도 구성원들이 ‘스스로 책임자임을’ 잊지 않는다.

당신과 당신의 회사는 이 중 어느 쪽인가.

박운영(커리어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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