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교차지원 허점 수능 예체능 '가짜'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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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접수가 끝난 14일 부산 K고교 3학년 교실. 문과 선택과목 수업이 시작되자 많은 학생들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예.체능계열인데요. 도서관에서 공부하겠습니다. " 이렇게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는 학생은 3학년생 7백명 중 10%가 넘는 90여명. 이 학교 진학담당교사는 "이들 중 실제로 음악.미술분야 학과로 진학하려는 학생은 불과 10여명" 이라고 귀뜀해 줬다.

나머지는 수능시험만 예.체능 계열로 치고 인문.자연계열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는 문.이과 학생들이며 그 수는 지난해보다 무려 3배 많다.

이같은 현상은 올해 대학입시에서 건국대.단국대 등 1백여개 대학이 예.체능계열로 수능을 치르더라도 인문.자연계에 지원할 수 있는 계열간 교차지원을 대폭 허용하면서 나타났다.

서울.부산.경기도 지역 고교들이 이에 따라 중.하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제범위가 좁고 난이도가 평이한 예.체능계열로 시험을 치르도록 권장, 진학률 높이기에 나서면서 예.체능계열 응시생이 크게 늘었다.

부산의 경우 전체 수능응시생 가운데 예.체능계열 지원자 비율이 지난해보다 6.9%포인트 증가한 20%나 됐다.

서울 역시 지난해에 비해 0.9%포인트 증가한 15%, 경기지역은 지난해에 비해 2.9%포인트 증가한 17.7%나 된다.

예.체능계열로 응시할 경우 출제범위가 인문계 (9개 과목) 보다 2개 과목 (수학Ⅰ.사회탐구선택과목) , 자연계 (10개 과목) 보다는 3개 과목 (수학Ⅰ.수학Ⅱ.과학탐구선택과목) 이 적어지고 수험생들이 어렵게 여기는 수리탐구Ⅰ영역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공통수학만 공부하면 된다.

부산 B고.서울 K고 등은 예.체능계열 응시 학생을 위해 '예.체능반' 을 편성, 방과 후 집중 지도하고 있다.

한 교사는 "예.체능계열 응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도 다른 책을 펴놓고 공부하기 때문에 수업에 지장을 주는 일이 많아 별도의 예.체능반을 구성했다" 고 밝혔다.

부산 가야고 이명원 (李明源.46) 교사는 "예.체능 계열로 시험을 친 학생들이 특히 자연계로 진학해 제대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 이라며 "입시제도상 허점을 이용한 비교육적인 현상" 이라고 말했다.

동의대 황한주 (黃漢柱) 입학과장은 "지난해 예.체능 계열로 수능시험을 친 뒤 토목 등 이공계열에 합격한 일부 학생들이 수학의 기초가 안돼 있어 전공기초과목을 가르칠 수 없다는 교수들의 불만이 있어 올해는 예.체능계열의 인문.자연계열 교차지원을 금지했다" 고 밝혔다.

◇ 계열별 교차지원 = 수능시험 응시계열과 대학 지원계열이 서로 달라도 지원을 허용하는 제도. 지난해 1백40개대에서 올해 1백70개대 (일부 예.체능 교차지원 불허) 로 늘어났다.

과거엔 교차지원 허용폭이 극히 작아 교차지원자에 대해 가산점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불이익을 줬으나 대부분 대학들은 학생 유치를 위해 허용 폭을 크게 늘렸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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