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품' 인턴사원 4명중 3명 실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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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하루 12시간씩 공휴일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다시 실업자가 됐습니다. " 최근 중소 건설업체인 A건설에서 6개월간 인턴을 마친 金모 (27.K대졸) 씨는 회사측으로부터 '채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동기생 3명중 단 한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회복 바람을 타고 취업난이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지난해말부터 정부가 자금을 지원, 기업과 공공기관.사회단체 등에 임시 고용됐던 인턴 사원중 절반 이상은 다시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

서울대 등 상위권대학 출신은 인턴 수료자의 80% 이상이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반면 지방대나 여대 출신은 채용률이 20~30%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7월말 현재 정부지원 인턴과정 참여자 3만7천여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25% 가량인 9천5백여명. 중도 탈락자 1만5천여명을 빼더라도 인턴과정 수료자의 43% 정도만이 정규직으로 채용된 셈이다.

채용률이 낮은 것은 채용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유치원.종교단체 등까지 인턴들을 마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5대 기업이 1천7백여명의 인턴 사원중 85% 이상을 정규 사원으로 채용한 반면 나머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47%, 각종 공공기관.사회단체 및 5인 이하 영세 사업장들은 10% 정도만 정식 발령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5명의 인턴사원을 받았다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채용 여력이 없었지만 정부에서 1인당 월 50만원씩을 지원한다고 해 인턴을 받았다" 며 "회사측에선 월 5만원의 교통비만 추가 부담했다" 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용기회 확대와 사회경험 제공이란 정부지원 인턴제도의 본래 취지는 간데없고 고급 인력을 싼값에 혹사시켰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의류업체인 C패션에서 일했던 安모 (25.여) 씨는 "커피 심부름과 청소는 물론 간식 만들기와 직원들 세탁까지 시켜 그만뒀다" 고 분개했다.

지방대 출신의 경우 더 참담하다.

C대의 경우 지난 1월 선발된 인턴 3백40명 중 6개월 연수뒤 정규직으로 채용된 인원은 72명 (21%)에 그쳤다.

그나마 대기업과 정부투자기관의 인턴사원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비율은 1%에 불과했다. 한편 지난해 9월 입사한 성업공사 인턴사원 25명은 최근 "회사측이 1년 이내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계약직으로 입사하거나 퇴사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며 회사를 상대로 종업원 지위확인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이에 대해 성업공사측은 "일부 담당직원들이 정규직 운운한 것은 사실이나 회사측의 공식 입장은 아니었다" 고 해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房河男) 연구위원은 "채용 여력도 없으면서 인턴들을 마구 받은 업체도 잘못이지만 기업의 수급사정도 생각지 않고 무턱대고 인턴을 배정한 정부도 문제" 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선 악순환만 반복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천창환.안남영.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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