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해법으로 본 인도네시아의 권력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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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수하르토 때는 올브라이트가 나섰지만, 이번엔 클린턴이 직접 나섰다. " 하비비 대통령의 유엔평화유지군 (PKF) 수용 방침이 발표된 직후 자카르타 외신기자들 사이에 나돈 말이다.

인도네시아 유엔대사가 수용불가를 유엔 안보리에서 밝힌 지 불과 하루만에 수용으로 입장을 급선회한 결정적 요소는 미국이란 얘기다.

인도네시아의 저명한 정치평론가 사브린 사디킨 박사는 13일 중앙일보 취재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IMF) 으로부터 가해진 정치.경제적 압력으로 저항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 입장 번복의 배경"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좀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자카르타에서 프리랜서 평론가로 활동중인 폴 고든은 "TNI는 이미 동티모르에서 얻을 것은 다 얻었다" 고 지적했다.

학살과 추방을 통해 '독립을 선택한 동티모르인들에 대한 복수' 가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내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에도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고 증거인멸과 상황정리에도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는 얘기다.

실리를 다 취한 상황에서 국제적 압력에 끝까지 저항해 쓸데없는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한편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는 PKF 수용으로 권력투쟁의 희비가 엇갈렸다.

군부가 실리를 챙긴 데 반해 하비비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집권 골카르당은 13일 간부회의를 열고 하비비에 대한 대선후보 지명 철회를 논의하기까지 했다.

결과는 다음달 18일 전당대회에서 발표된다.

인도네시아내 민족주의 세력의 비난도 하비비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다.

수하르토 퇴진 이후 미숙했던 부패사건 처리방식에 대한 야당의 공격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권력은 사실상 위란토 국방장관을 앞세운 군부로 이관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PKF 수용을 처음으로 시사했던 위란토의 말이 결국 현실화됐다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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