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 문학제' 11~12일 진해서 성황리에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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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성경에 이르기를, '선지자는 제 고향에서 박해를 받는다' 고 했지만, 같은 혜안 (慧眼) 의 감수성을 지닌 시인의 운명은 선지자보다 행복한 것 같다.

저마다 자기 고장의 문화적 특색 갖추기에 힘쓰는 요즘, 월하 (月下) 김달진 (金達鎭.1907~1989) 시인의 고향 진해는 남해 쪽빛 바다에서 자란 그의 은자 (隱者) 적 시심을 돌이키는 문학제로 가을을 시작한다.

지난 11~12일 진해시 소사동 김달진생가.진해시민회관를 비롯한 진해시 일원에서 열린 제4회 '김달진 문학제' 는 청소년 시낭송 대회.월하백일장.한국근대 희귀소설집 전시회 등 일반인 참여행사와 '현대시의 사회적 효용' 을 주제로한 심포지엄처럼 문학인들의 행사가 함께 어우러졌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은 시인 김명인교수 (고려대) 의 '근대넘어서기와 시의 진정성' 을 제1주제로, 정신과의사이면서 문학평론가인 김종주씨의 '시치료와 치료시' 를 제2주제로 삼아 문학적 논의의 경계를 넓힌 것이 눈에 띄었다.

돌이켜보면 김달진 시인 역시 문학의 경계 안에만 가둘 수 없는 인물. 29년 양주동의 추천으로 시 '잡영수곡 (雜詠數曲)' 을 '문예공론' 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30년대 김동리.서정주 등과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고 해방직후 청년문학가협회 구성에 참여하기도 했던 월하이지만, 한때 금강산 유점사에서 승려로 살기로 하는 등 한학과 불교에도 깊이 발을 담갔기 때문이다.

동국대의 전신 (前身) 중 하나였던 중앙불교전문학교 출신인 그는 60년대 초부터 문단에서 잠적한 대신, 20여년간 불경번역사업에 몰두했다.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 '장자' '법구경' 등 고전을 번역하면서 동양적 사유에 심취한 그의 정신세계는 시구에서도 엿보인다.

"내 으레 하는 버릇/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면/새벽빛 받는 불암산을 보려고/담배 피워물고 베란다로 나간다//그러나 오늘 아침/비안개에 아득히 묻혀/그 산이 안 보인다//나는 그만 무연 (無然) 히 섰다가/그대로 들어온다.

" (시 '불암산 (佛岩山)' )

한편 올해의 김달진 문학제에는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산 (山) 시인' 장호 (1929~1999)에 대한 추모의 자리도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작년까지 함께 문학제에 참여했던 평론가 김윤식교수 (서울대) 는 장호 시인에 대해 "엄격하면서도 후배인 저에게 예의가 깎듯했던 분" 이라고 회상하면서 구도적이고 성찰적인 등산가였던 시인의 면모를 시집 '신발산' 을 통해 읽어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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