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회장 수사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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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9일 오전 현대증권 이익치 (李益治.55) 회장 사무실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틀 전 검찰에 소환된 李회장이 귀가조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직원들이 청소를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소문은 한시간여만에 뒤집어졌고 李회장은 이날 밤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李회장의 운명이 이처럼 역전된 것은 수사를 맡은 서울지검 특수1부 수사검사들의 '고집'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검찰 수뇌부는 "경제논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며 불구속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자 수사검사들은 "검찰이 권력에 밀리고 재벌에까지 밀려야 하느냐" 면서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한 중견검사는 "李회장을 귀가시킨다면 검찰 수뇌부가 책임지고 옷을 벗어야 할 것"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수뇌부가 수사검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구속방침을 결정했다.

상명하복 (上命下服) 을 중시하고 검사동일체를 앞세우는 검찰 조직에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지난 7월 인천지검이 경기은행 퇴출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상부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임창열 (林昌烈) 경기도지사 부부를 구속하고 최기선 (崔箕善) 인천시장을 소환 조사한 데 이어 또 한번 젊은 검사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지금까지 검찰이 정치권 눈치를 봐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고작 특별검사제 도입밖에 더 있느냐" 면서 "검찰이 사는 유일한 길은 공평한 법 집행뿐" 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의 한 차장검사는 "정당한 주장을 펼치는 후배 검사를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만 일방적으로 강요할 경우 무능한 간부로 평가받기 십상" 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검찰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검찰의 꽃' 으로 불리던 일선 지검장이 제일 힘든 자리란 동정론까지 나온다.

서류에 도장찍고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선 검사들의 요구를 수용, 대검에 전달해 관철시키는 심부름꾼 역할을 해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위로부터 부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지휘관으로, 후배들로부터는 윗사람 눈치나 보는 능력없는 간부로 낙인찍힐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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