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혁당' 어떻게 적발했나…격침 잠수정서 '단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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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정원이 민혁당 간첩단을 적발할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는 지난해 12월 18일 전남 여수해안에서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나왔다.

당시 잠수정에선 몇구의 시신과 함께 수첩 및 위조된 주민등록증.필름.포장지 등이 발견됐다.

수첩에는 주소지 2곳과 함께 전화번호 및 핸드폰.호출기 번호 12개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번호와 번지수는 하나같이 실제 존재하지 않은 '암 (暗) 부호' 로 돼 있었다.

국정원 관계자들의 현장조사 결과 실제 번호 및 번지수에 '2' 가 더해진 사실을 해독해낼 수 있었다.

국정원은 97년 10월 최정남 부부 간첩사건 당시 이들 부부 간첩이 언급했던 김영환씨의 중국 거주 전화번호가 남파간첩의 수첩에 기재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첩에는 '08 - 42 - 0884 - 9717' 로 적혀 있었으나 각 숫자에서 '2' 를 빼자 '86 - 20 - 8662 - 7595' 란 번호가 나온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조유식.심재춘씨의 소재지를 모두 파악했다.

이번에 적발된 관련자 가운데 3명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영옥씨는 남파간첩이 지니고 있던 '원진우' 명의의 위조 주민등록증이 실마리를 제공해 수사망에 포착됐다.

국정원은 실존 인물인 원씨가 주민등록증을 분실한 적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누군가가 원씨의 신원을 파악한 뒤 이를 도용,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국정원은 원.본적지와 주소지 관할 동사무소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지난해 11월 위조한 도장으로 원진우씨의 주민등록등본 등을 발급받은 인물이 하영옥씨 임을 밝혀냈다.

국정원은 또 서울 관악구 신림동.봉천동 일대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제과점 포장지와, 쓰레기봉투.가방 등을 통해 이 일대 은신 가능한 장소를 샅샅이 추적해 남파간첩이 서울 관악구 W고시원에 입실했던 사실도 확인했다.

국정원은 이와 함께 북한 반잠수정에서 수거한 필름 2통을 현상, 남파간첩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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