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아버지·아들 ‘일주일에 3편’씩 영화 보고 난 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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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기적의 필름클럽
데이비드 길모어 지음, 홍덕선 옮김, 솔
302쪽, 1만2000원

책을 읽은 뒤 다시 맨 첫 페이지를 보라. 영화관에서 나온 아들이 새 여자친구와 소곤소곤 귀엣말을 하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3년의 세월. 학교를 자퇴한 9학년(한국의 중3) 아들 제시가 두번의 처참한 실연 끝에 록밴드 멤버로 자립하는 결말이 새삼스럽다. “어떻게 끝나는지 알아야만 모든 장면들이 처음부터 얼마나 멋지게 짜 맞춰진 것인지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61쪽)는 영화 감상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그처럼 짜임새 있게 잘 쓰여진 영화 같은 실화다.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지은이는 학교에 흥미를 잃은 제시에게 과감한 제안을 한다. 학교를 그만 둬도 좋다. 단, 내가 선택한 영화를 일주일에 세 편씩 함께 보자.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를 시작으로 아버지의 ‘영화 홈스쿨링’이 시작된다.

순조로울 리 없다. 아들은 비틀스의 로큰롤 영화에 시크둥해 했고, ‘원초적 본능’에 열광했으며, 오드리 헵번의 연기에 지루함을 감추지 못했다. 말론 브란도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데이빗 크로넨버그를 두고 부자(父子)는 종종 의견을 달리했다. 무엇보다 아들은 스크린과 비교되지 않는, 펄펄 끓는 현실의 정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예쁜 여자친구가 왜 나를 찼는지, 다른 남자와 자지는 않을지, 전화를 하면 지는 것인지. 교과서로도, 평론가적 지식으로도 풀 수 없는 함수 앞에 아버지는 무력하다.

그러나 일거리가 떨어져서 반(半) 백수로 보낸 3년이 결과적으론 사춘기 아들과 온전히 함께 하는 기회가 됐다. 둘은 여자친구·베트남·발기불능·담배 등을 놓고 수백 수천 시간 대화할 수 있었다. 아들은 킹스트리트를 벗어난 ‘세상의 끝’을 상상할 수 있게 됐으며 아버지는 지나간 청춘의 열망을 되새길 수 있었다. 실용 면에선 성공적인 ‘홈스쿨링 입문서’요, 영화적으로는 ‘추천작 114편 길라잡이’다. 무엇보다 아버지를 통해 아들이, 아들을 통해 아버지가 한뼘 더 ‘성장’해가는 따스한 논픽션 에세이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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