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요 찾은 호소카와 전 일본 총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 호소카와 전 일본 총리가 26일 경남 산청군에 있는 산청요를 방문해 직접 도자기를 빚고 있다. 산청=송봉근 기자

"조선시대 도공들이 땀 흘렸던 곳에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26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방목리에 있는 도자기 작업장 산청요(山淸窯). 1990년대 초 일본 정계를 이끌었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66) 전 총리가 구슬땀을 흘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었다. 산청요는 한국의 중견 도예인인 민영기(58)씨의 작업장으로, 15~16세기 조선 도공들이 활동하던 도요지에 자리잡고 있다.

2박3일 일정으로 이날 입국한 그는 부산시 중앙동에 있는 도자기 골동품점을 둘러본 뒤 산청요를 찾아 2시간 정도 머물며 도자기 석점을 만들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오는 10월 17일 도쿄 등지에서 열 예정인 개인전을 앞두고 조선 도공들이 활약하던 곳에서 작업을 해보는 것이 도자기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찾아왔다"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그의 방문에는 도자기 제작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일본 TV 취재진이 동행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가 산청요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잠시 이곳에 들러 도자기를 빚었다. 그는 " 지난번엔 민씨를 만나기 위해 왔었다면 이번엔 조선 도공들의 혼이 서려 있는 이곳의 흙을 다시 한번 느껴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와 민씨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일본 도쿄에 있는 유명 전시관인 호중거(壺中居)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던 두 사람은 도쿄국립박물관 명예관장인 하야시아 세이조(76)의 소개로 알게 됐다. 98년 정계에서 은퇴한 뒤 도자기 공부에 열중하던 호소카와 전 총리는 조선 도공의 후예 격인 민씨에게 호감을 갖게 됐고, 두 사람은 이후 교류를 해왔다.

민씨는 임진왜란 이후 400여년간 자취를 찾을 수 없었던 조선 찻잔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일본 다도(茶道)계에서 받고 있다. 민씨는 "호소카와 전 총리의 도예 경력은 길지 않지만 실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일본 내에서도 '열심히 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93년 총선에서 38년간의 자민당 독주를 끝내고 연립정권의 첫 총리가 됐다. 당시 일본 정계의 숙제였던 정치개혁법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산청=김관종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