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재외동포법 재고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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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83년 중국 학자들은 중국인의 인종적 특성 규명을 위한 혈청조사를 실시했다.

우리 동포와 다른 소수민족을 포함해 32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조사였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닝샤 (寧夏) .베이징 (北京). 산둥 (山東) .다롄 (大連). 상하이 (上海) 지구의 한족 (漢族) 과 우리 동포가 북방형으로, 우한 (武漢) .광시 (廣西).광둥 (廣東). 쓰촨 (四川). 구이저우 (貴州).대만 등지의 한족은 형질이 다른 남방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중국인으로 아는 한족에 사실은 남.북 두 계열이 있고, 우리 동포는 창춘 (長春).다롄.산둥.상하이 지구의 한족과 같은 형질을 지닌 것으로 분류된 것이다.

상하이 지역민이 북방계로 밝혀진 것도 의외였다.

이 조사에 쓰인 혈형기인 (血型基因) 은 1백만년 이상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형질적으로는 남.북 중국인 상호간보다 북방중국인과 한국인이 더 친연관계에 있음이 확인됐다.

몇해 전 일본에서는 또 한 학자가 비슷한 연구조사 결과 '일본인의 80%는 한국계' 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어가 남방의 티베트.베트남.태국어와 같은 계열로 분류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북방중국인의 남방중국인과 다른 인종적 특질은 유사 이래 반복된 고조선.고구려.백제.돌궐.선비.거란.몽고.만주족 등 북방계 정복민의 이주정착.융화과정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들을 놓고 새삼 '원조' 논쟁 따위를 벌이는 것은 어리석다.

한국인 가운데도 중국계.일본계가 적지 않고 중국인들은 해외에 3천만명을 헤아리는 화교 (華僑) 의 효시를 고조선으로 망명한 기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니까.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로 분화한 현재의 상황은 수많은 인종집단이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역동적인 역사과정의 반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만일 고구려가 만주.몽고.화베이 (華北) 지방을 아우른 최성기의 강역을 후대까지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 중국북부와 만주.몽고지역인들은 한국인이 됐을 터이고, 백제의 일본지배가 더 오래 지속됐더라면 일본은 다른 민족으로 갈라져나가지 않고 한국의 변방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상정해 볼 수도 있지만 역사에 가정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 등에 관한 법률' 은 이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법안은 해외동포들에게 출입국.경제활동 등에서 내국인에 준하는 법률상의 특수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입법추진 과정에서부터 법무부와 외무부간에 주도권 다툼.의견대립이 있었고,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지역 동포들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5백만에서 6백만명을 헤아리는 재외동포 가운데 2백만명의 중국동포, 40만명의 재러시아 동포 등 절반 가량을 빼놓은 것이다.

이런 법안을 만든 정부의 논리는 해당국과의 마찰 우려다.

국회통과 후에도 논란이 끝나지 않아 시민단체와 국내 체류 중인 중국동포 등의 단식.시위 등 반발에 부닥치자 대통령은 적용과정에서 재중.재러 동포들이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행정적 차원에서의 보완을 지시했지만 이미 통과된 법의 한계를 넘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재중.재러 동포의 문제는 단순히 해당지역 동포사회와의 관계문제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21세기 비전과 직결돼 있다.

거주국 사정에 따라 법률적 지위는 다르지만 그들의 선택 이전에 우리 정부가 먼저 그들을 법률적 보호나 배려의 대상에서 제외해 차별을 두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해방 직후 2백만명을 넘던 재일동포는 65년 한.일협정 후 우리 정부가 사실상 보호를 포기하면서 일본 귀화가 급속히 늘어 현재는 60만명 내외로 줄었다.

'재외동포법' 의 취지대로라면 러시아.중국동포도 머잖아 전철을 밟을 것이다.

불과 한 세대 후에는 옌볜 (延邊) 의 자치주나 러시아의 동포사회는 해체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의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단일민족국가를 지향하는 일본과 달리 중국.러시아는 다민족국가다.

특히 중국은 자기네 해외 화교에 대해 음양으로 정책적인 배려를 하고 있는 나라다.

이들 국가의 소수민족정책과 배치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에 앞서 그런 우려가 기우 (杞憂) 임을 해당국 정부에 납득시켜 차별없는 동포정책을 펴는 당당한 정부가 돼야 한다.

문병호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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