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형사처벌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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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7일(현지시간) 로마의 치기궁에서 열린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로마 로이터=뉴시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3) 이탈리아 총리가 형사 처벌을 받을 위기에 몰렸다. 면책특권이 박탈됐기 때문이다. 그는 뇌물공여·탈세 등으로 기소돼 있지만 이 특권 덕분에 법원의 출석 요구는 받지 않아왔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7일(현지시간) 고위 공직자 면책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이 법은 대통령과 총리, 상·하원 의장 등 네 명은 재임 기간 중 기소되지 않고 취임 전에 시작된 재판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일단 3건의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출판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판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있다. 또 TV채널권을 사들이며 탈세·분식회계를 한 혐의로도 기소된 상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재판에서 영국인 변호사에게 60만 달러(약 7억원)를 건네며 위증을 시켰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사건에서 영국인 변호사가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베를루스코니도 기소되면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탈리아 사법당국이 성범죄와 관련해 수사할 수도 있다. 이혼 소송을 제기한 그의 부인 베로니카 라리오(52)는 “남편이 어린 여성들을 만나왔다”고 말했다. 최근 한 여성은 방송에 출연해 “돈을 받고 총리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재판을 피하기 위해 의회를 동원해 다시 면책법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2003년에도 면책법을 제정했고, 당시에도 1년 만에 위헌 결정이 났다. 그가 조기총선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이날 총리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다양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국민 6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이탈리아인들은 예쁜 여성을 좋아하고 규칙을 잘 어기는 자신들과 총리가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그의 인기를 설명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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