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중수교 7주년] 베이징대 지센린 교수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4일로 한.중 수교 7주년을 맞는다.

이 짧은 기간 한.중은 정치.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방중 (訪中) 등 한국 대통령이 3명이나 중국을 찾았고, 중국도 장쩌민 (江澤民) 주석 등 지도자 대다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23일엔 조성태 (趙成台) 국방장관이 한국 국방장관으로서는 처음 중국을 방문, 츠하오톈 (遲浩田) 중국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는다.

한국전에서 맞부닥쳤던 반세기전을 회고할 때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숨결이 들린다.

지난해 IMF 한파로 잠시 움츠러들었던 인적 교류도 올해는 다시 봇물이 터진 듯 활기차다.

수교 7년만에 양국 인적 교류가 올해 처음으로 1백만명을 돌파할 예정. 양국간 무역고도 2백억달러를 향해 힘차게 진군 중이다.

이같은 양적 교류에 맞춰 역사.문화 등 질적 교류 확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관련 많은 역사기록들이 중국의 사료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고 안타까워하는 중국의 석학 지셴린 (季羨林) 베이징 (北京) 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21세기 바람직한 한.중 교류 방향을 엿본다.

- 20세기는 한.중 문화교류의 단절기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반기는 일제의 한국침략으로, 후반기는 한.중간의 체제차이 등으로 인해 교류가 끊어지다시피 했다는 지적들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끊어진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화란 인류가 물질과 정신면에서 창조한 가장 우수한 것들의 총화이다. 이같은 문화교류는 인위적으로 중단.재개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본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는 것도 한.중 교류의 하나다. 수교 전 한.중 교류의 규모가 작았을 뿐이다. 수교 후엔 규모가 확대됐고 편리해졌다는 게 다른 점일 것이다. "

-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한.중 교류를 어떻게 평가하나.

"세계 각 민족은 크고 작고의 다름이 있고 역사 또한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나름대로 문화에 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어느 한 민족이 유일하게 자기민족만이 세계 문화에 공헌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파시즘에 다름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한은 서로 교류를 통한 발전을 추구해 왔다.

표면상으로 볼 때 중국의 한국에 대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실제로 문화는 교류이지 어느 한 방면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다. 중국도 한국에서 배운 게 많다. 예를 들면 고려지 (高麗紙) 로 불리는 제지법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

- 중국 내 많은 한국관련 자료들이 사장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들었다.

"중국은 역사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도 길고 자료도 무척 많다.

그러나 우리는 만족하지 못한다. 한국의 '이조실록' 이나 아랍 여행가들의 견문록에도 중국에 관한 소중한 자료들이 많이 있다. 반대로 중국 내 서적들엔 한반도에 관한 자료가 매우 많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입장에서 나는 이런 건의를 하나 하겠다. 중국 고서 내 한반도 관련 자료를 베껴 한국과 중국학자들의 연구에 제공하고, 한국 내의 중국관련 문헌도 베껴 중국 학자들이 중국을 공부하는데 이용케 하자는 것이다. "

- 바람직한 21세기 한.중 교류방향은.

"중.한 간에는 천인합일 (天人合一) , 즉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공통적인 문화가 흐른다. 이는 자연정복을 위주로 한 서양문화와 대칭되는 동양 특유의 문화다. 중.한 교류는 바로 이 과거부터 이어온 천인합일의 문화를 바탕으로 계속 발전됐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환경파괴를 막을 방법은 동양의 천인합일 정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 지센린 교수는…

산둥 (山東) 성 린칭 (臨淸) 현 태생. 34년 중국 명문 칭화 (淸華) 대학 서양문학과를 졸업하고 41년엔 독일의 괴팅겐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46년 귀국, 베이징대에서 지금까지 53년간 교편을 잡고 있다.

중국과학원 위원.중국외국어교학연구회 회장.중국언어학회 회장.전국인민대표대회 (全人大) 상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철학과 문학.언어.정치학 분야에 두루 밝아 중국 당대의 석학이자 대표적 지성으로 꼽힌다.

특히 인도 고대문자 범문 (梵文) 연구에 관해선 불후의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한반도 관련 자료를 자주 접하는 그는 한국 고대사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