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 SK 김경태 "더 이상 눈물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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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교시절 그는 에이스였다. '39안타의 사나이' 박종호(삼성)와 함께 1990년대 초 성남고를 고교야구 정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경희대에 진학해서도 에이스로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거포' 김동주(두산)가 버티고 있던 고려대에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98년 졸업과 함께 신인선수 2차 지명에서 1순위로 프로야구 LG에 낙점됐다. 이때까지 그는 평탄한 코스를 달려왔다. 그러나 프로에 입단해서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입단 첫 해 9경기에 나와 승패 없이 고작 4.2이닝만을 던졌다. 대학 때 무리해서 볼을 던진 탓에 어깨가 망가진 때문이었다. 99년에도 25경기에 나와 41.1이닝을 던졌지만 단 1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어깨 통증 못지않게 '패전처리용'이라는 꼬리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LG에서 그렇게 2년을 더 뛰었지만 등판한 경기는 고작 1.2이닝에 그쳤다.

그러고는 방출이었다. 2002년 자존심도 버리고 연봉 2200만원에 두산으로 옮겼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두산에서 첫 해 10경기에 출장했으나 방어율은 무려 15.75. 2003년 시즌엔 겨우 0.2이닝만 던졌다. 사실상 투수로서의 생명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두산도 시즌 중간에 방출을 선언했다.

올 시즌 SK 중간계투로 맹활약 중인 김경태(29) 얘기다.

지난해 두산에서 쫓겨난 김경태는 받아주겠다는 구단이 없어 그라운드를 떠났다.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살길을 찾아 한 재활병원에 업무직 직원으로 취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야구와 멀어질수록 야구에 대한 그리움은 더했다. 다시 글러브를 챙겼다. 한강변에 나가 달리기도 하고, 모교 후배들과 이를 악물고 공을 던지며 뒹굴었다. 아픈 어깨도 아문 느낌이었고, 구위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김경태는 올 초 오디션을 거쳐 흔히 '연습생'이라 부르는 '신고선수'로 SK에 들어갔다.

그는 요즘 야구 인생에서 '해피엔딩'을 꿈꾸고 있다. 먼길을 돌아 돌아 찾아낸 행복.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에 따라 지난달 1군에 합류한 그는 시험등판과 2군행을 반복한 끝에 지난 14일 한화전에 구원등판, 무려 1910일 만에 눈물겨운 승리를 올렸다. 그리고 잇따른 등판에서 홀드 두개를 기록하더니, 지난 24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LG전에서 또다시 구원승을 올리는 감격을 맛봤다. 시즌 2승째다.

10승 투수가 즐비한 프로무대에서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성적이지만 김경태에겐 20승이 부럽지 않은 승수다. "마운드에 서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선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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