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살벌하고 무서운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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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하지만 숨어도 소용없다.
술래는
20배 줌 기능 360도 회전하는
24시간 감시 카메라.

당신을 지켜준다면서
술래는 당신을 계속 지켜본다
그것도 272개의 눈으로.

술래가 항상 하는 말
"네가 지난밤 역삼동 골목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비틀비틀 술 취한 아저씨
급하게 찾은 골목 전봇대
시~원하게 일 처리하는 장면
술래에게 들켰다.

두근두근 청춘 남녀
겨우겨우 찾은 조용한 벤치
두눈 꼭 감고 마주앉은 모습도
술래는 훤히 다 보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어때

밤길을 걷다가
각목으로 뒤통수 맞고
밝은 대낮에
핸드백 날치기당하는 것보다
천 번 낫지

늦은 밤 들이닥친 강도가
가족을 한방에 몰아넣고
아까운 내 재산 털어가는 것보다
만 번 낫지

20여명의 생명을
이유 없이 앗아간 살인마가 있는데
목요일 비 오는 밤이 무서워
얼른얼른 집으로 향해야 하는데

"우리 동네에는
도대체 언제 들어오는 거야"
비(非) 강남 사람들이
불평해야 하는
살벌하고 무서운 세상, 세상.

*서울 강남구청이 관내에 설치한 272개의 골목길 방범용 폐쇄회로 TV가 25일 역삼동에 관제센터가 문을 열면서 본격 가동됐다.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됐고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은 정책이긴 하지만 인권침해에 대한 논란과 함께 부자 동네에만 설치됐다는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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