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럽식 동아시아 통합 … 한·중·일 3국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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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유럽연합(EU)의 미니헌법으로 불리는 리스본조약 비준동의안이 2일 아일랜드 국민투표를 통과, EU의 정치통합이 가속화하는 전기를 맞았다. 지난해 6월 국민투표에서 비준안에 반대했던 아일랜드 유권자들이 찬성으로 돌아섬으로써 EU 27개 회원국 중 25개국에서 사실상 비준 절차가 완료됐다. 폴란드와 체코 두 나라가 대통령 서명 절차를 남겨놓고 있지만 아일랜드의 찬성 여파로 최종 비준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되면 예정대로 내년 1월 1일 리스본조약 발효가 가능할 전망이다. 1951년 파리조약에 따라 유럽석탄철강공동체(ESCE)가 창설된 지 58년 만에 유럽은 지역통합의 최종 형태인 정치통합에 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프랑스·독일·벨기에 등 서유럽 6개국에서 출발한 EU가 동유럽까지 아우르는 거대 지역연합으로 발전하면서 불거진 논란 중 하나가 대표성 문제였다. EU와 상의할 문제가 있을 때 도대체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모호하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리스본조약 발효와 함께 이 문제가 해소된다. 대외적으로 EU를 대표하는 임기 2년6개월의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직이 신설되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EU 대통령과 외교장관이 탄생하는 셈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벌써 초대 EU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분위기다.

경제·사회·통화통합에 이어 정치통합 단계까지 간 EU를 보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동아시아공동체 추진 문제다. 전 세계적 지역공동체 결성 움직임에서 가장 뒤처져 있는 곳이 동아시아다. 동남아 국가들이 중심이 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통합 논의에 한·중·일 3국이 가세한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하지만 역내 주도권 다툼과 정치·경제적 이해 때문에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민주당 대표의 총리 취임으로 동아시아공동체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으나 구체적 로드맵은 아직 없는 상태다. 하토야마 총리가 주장하는 동아시아 통화공동체도 아직은 이상론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상을 현실로 바꾼 유럽의 성취를 남의 일로 치부할 것만은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적·문화적 교류도 크게 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북아 질서의 변화와 북한 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도 결국은 동아시아공동체의 큰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리더십과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10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동아시아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리는 뜻 깊은 자리가 돼야 한다. 유교와 한자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경제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의 협력이 결국은 동아시아공동체의 실현을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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