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강산 관광에 '전략'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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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대와 북한간 신변안전보장과 관광세칙에 관한 합의가 체결되자 정부는 즉각 그동안 중단됐던 금강산 관광 재개를 결정했다.

정부와 현대는 이번 합의로 신변보장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판단하는 듯하지만 과연 그런지는 의문이다.

관광세칙에서 일부 독소조항이 삭제되고 문제발생시 조정위원회를 통해 양자가 협의 처리하도록 하는 등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정부 참여가 배제된 데 대한 비판도 거세다.

사실 현대와 북측 금강산관광총회사가 체결한 신변보장합의서는 민간기업이 다룰 성질의 내용은 아니다.

관광객을 추방하거나 형사사건 처리 등의 문제는 국가의 배타적 권능에 속하는 사항으로 민간기업간에 임의로 처리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며, 설혹 합의한다 해도 정부에 대해 구속력이 있을 수 없다.

이런 '합의 아닌 합의' 로 신변보장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익 추구를 최우선 과제로 하는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부는 좀더 신중하고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물론 북한이 우리 당국과 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번 합의를 형식은 민간기업간 합의지만 실제는 정부간 합의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한은 당국간 합의조차도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리곤 했다.

정부는 불완전한 합의를 들먹이며 아무 문제도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은 다른 보통의 외국과는 다르며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관광객에게 주지시키고 철저히 주의하도록 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출발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분단 이후 최초로 일반국민들이 비록 제한된 구역이긴 하지만 북한 땅의 한자락이라도 밟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확실히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물방울이 떨어져 바위를 뚫듯이 금강산 관광도 남북화해와 북한 개방의 물꼬를 터줄 상서 (祥瑞) 로운 출발로 기대됐다.

반면 허술한 신변안전조치와 관광의 대가로 지불되는 9억4천만달러의 현금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북한의 일반주민과 완전히 차단된 제한된 공간의 소위 '통조림 관광' 을 통해 대북 교류의 궁극적 목적인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더구나 북한에 제공되는 막대한 자금은 북한의 개방이 아니라 오히려 폐쇄 억압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 막대한 현금을 아무 조건없이 제공함으로써 북한이 굳이 위험부담이 따르는 투자유치나 경제협력에 나설 인센티브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번 45일간의 관광중단은 정부로 하여금 금강산 사업의 제반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태의 단초가 됐던 신변안전 문제가 해결됐으니 사업을 계속하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금강산 사업의 부작용은 없는지, 또 이 사업을 북한의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기적 전략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번 관광 재개협상에서 북한이 조금이라도 태도를 완화한 것은 현대가 제공하는 현금 때문이었다.

금강산 사업이 계속되고 우리가 먼저 베풀면 언젠가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조금씩 쌓여가는 대북 경제 레버리지를 북한 변화 유도를 위해 기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냉철한 전략이 절실하다.

자본의 거대한 힘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사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카를 마르크스였다.

그는 '공산당선언' 에서 부르주아 (자본가)가 이룩한 성취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로마의 수로 (水路) , 고딕성당과 같은 불가사의를 훨씬 뛰어넘는다고 설파했다.

자본의 무서운 돌파력을 이용해 북한에 개방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막연한 기대와 모호한 낙관론으로는 개방의 바람은 차단한 채 자본의 과실만 따먹으려는 북한에 역이용만 당하게 된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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