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운행 멈추고 환자돌봐 친철한 기사에 흐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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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달 2일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오후 11시40분발 금호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터미널을 떠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승객 중 한 사람이 괴로운 표정으로 기사 앞으로 다가갔다.

그 승객은 호흡이 곤란하다며 광주까지 내려갈 수 없으니 빨리 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차 안에는 환하게 불이 켜지고 기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려왔다.

"갑자기 환자가 발생했으니 손님들께서 양해해 주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버스는 톨게이트가 아닌 버스정비소로 향했다.

정비소에 도착한 기사는 친절하게 아픈 승객을 부축하고 버스에서 내려 경비실로 들어갔다.

이후 병원과 아픈 사람의 집에까지 백방으로 전화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버스 안 승객들에게 미안하다는 양해의 말도 여러 번 했다.

버스가 20~30분 늦게 광주에 도착했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사는 내리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버스 기사들의 불친절이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즘 아픈 사람을 도운 이 운전기사의 선행에 모처럼 사람 살아가는 맛을 느낀 흐뭇한 날이었다.

김예곤 <광주시 남구 백운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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