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성] 농약없는 '잎차' 만들기 20년 차정금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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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농약을 뿌린 차를 마신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차는 그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가녀린 체구로 '야생차' 를 지켜나가는 징광문화 차정금 (車貞金.46) 사장. 사장이란 직함이 어색할 만큼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이다.

사실 그는 징광문화의 야생차를 맡은지 채 1년도 안된 풋내기 경영인이다. 그러나 야생차에 대한 그의 집착이 남다른 것은 '옛것' 만을 찾아 평생을 옹고집으로 지낸 남편 고 (故) 한상훈사장이 남긴 일이기 때문. 韓전사장은 97년 세상을 뜬 '' 뿌리깊은나무' 한창기사장의 동생이기도 하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징광리 15만여평의 야생 차밭은 야생차밭만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 지난 79년 신접살림 몇달만에 친정으로 들어가게 되자 남편은 셋방 보증금 6백만원을 빼내 차밭조성을 시작했다.

마사토와 암반층으로 된 땅과 해풍과 육풍이 적당히 불어 차 재배지로는 최적이라는 판단에다 폐허가 돼 버린 옛 징광사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韓전사장의 야심이 뭉뚱그려져 돈이 손에 쥐어지는 대로 땅을 사들였다. 전국 사찰을 헤집고 다닌 끝에 재래종 소엽 차나무를 수집, 파종하는데 성공했다.

"결혼초 그이는 제가 교사생활로 작은 목돈을 모아두면 며칠 안으로 몽땅 들고 내려가 차밭에 쏟아부었죠. 쪼들리는 살림에 야속한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비료나 농약은 전혀 안주고 1년에 3번 정도 차나무 주변의 잡초만 베어주고 전지작업만 했다. 그 때문에 비료와 농약을 치면 파종 후 3년만 지나면 된다는 차 수확도 15년이나 걸려야만 했다.

찻잎을 딴 후에도 수증기로 쪄내는 대량 생산기술은 철저히 외면했다. 무쇠솥에서 손으로 직접 덖고 비비기를 아홉번씩 거듭했다. 한국 전통기법을 지켜야 한다는 남편의 고집때문이었다. 그래서 징광 야생차는 '녹차' 대신 '잎차' 로 불린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계산 없이 미련한 짓만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던 징광잎차가 서서히 진가를 나타내고 있다.

車사장은 "얼마전 일본 차 전문가들이 징광차밭을 답사하고 갔다" 며 "품질은 나무랄게 없다는 평을 받아 곧 일본 수출 길도 열릴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짐을 모두 벗은 것 같지는 않다.

전통옹기.전통유기.전통염색이라는 3가지 일이 그를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 이 역시 지난해 세상을 떠난 남편이 벌려놓은 것들인데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는 결혼한 지 10년만에 남편에게 아름아름 배운 기술로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전통문화지킴이' 이 됐다. 찾는 이가 가물에 콩나듯한 유기는 물론 염색.옹기도 아직은 수익성이 떨어져 징광잎차에서 어렵게 남긴 이익을 재투자해야 한다.

"간암 선고를 받은지 3개월만에 홀연히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한동안 무척 방황했지요. 모든 일을 맡아서 할 자신도 없었고 정리할 것을 권하는 주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의 옹고집을 자신이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어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아직 결실도 보지못한 남편의 유업을 중도에 덮어버린다는 것은 배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다시 쪽물 항아리에 베도 담그고 옹기굴도 드나든다.

"남편은 씨앗을 뿌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그 열매를 거둘 수 있을지 아니면 또 씨만 뿌리고 갈지 모르지만 그이처럼 그저 미련하게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일할 겁니다." 그에게서 유산처럼 남겨진 '전통' 옹고집이 느껴졌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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