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안정대책 뭔가] '대우수습' 정부가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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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휴일인 25일 경제장관회의까지 열어 대우 대책을 발표한 것은 26일부터 열리는 금융시장에 '투자신탁과 대우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이상 대우그룹이나 채권단에만 맡겨놓지 않고 정부가 전면에 나서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주 23일 벌어졌던 사상 최대의 주가 폭락과 금리 급등 등 현재의 금융혼란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이번 대책의 큰 줄기는 크게 네가지다.

첫째, 대우와 관련된 금융기관에 대한 충분한 자금지원이다.

우선 금융시장 불안의 진원지격인 투자신탁사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나서 단기자금을 지원해 주고 대우에 대한 출자전환 등으로 부실을 떠안는 은행에는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신축적인 통화운용으로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자금시장 경색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셋째, 대우그룹의 계열사.자산 매각을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맡아 처리하고 출자전환을 통해 구조조정을 신속.확실히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넷째, 대외적으로는 외국 채권금융기관과 대우의 해외부채 만기.상환조건 재조정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해외부채는 해외 현지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했던 정부 입장에서 한걸음 후퇴한 것이다.

외국 투자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선 대우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이중에서 당장 시급한 것은 투신사로 수익증권 환매요구가 몰리면서 금리가 급등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수익증권 환매요구가 몰릴 경우 투신사는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콜시장에서 자금을 닥치는대로 끌어갈 수밖에 없어 단기금리가 급등하게 되고 회사채나 국공채 매수세력이 사라져 장기금리도 뛸 수밖에 없다.

이는 주가 폭락으로 연결돼 유상증자를 통한 기업 자금조달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우선 투신사가 콜시장에서 자금을 끌어가도 단기금리가 뛰지 않도록 투신에 집중적으로 자금지원을 하기로 했다.

먼저 1조2천억원 규모의 투신안정기금이 동원된다.

한국은행도 환매조건부채권거래 (RP) 방식을 통해 투신에 2조~3조원을 대줄 계획이다.

그래도 안되면 투신이 보유하고 있는 약 20조원의 통안증권을 한국은행이 무제한 매입, 투신이 고객의 환매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사태는 막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기관투자가들이 투신에 맡긴 자금은 빼가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자제를 촉구할 방침이다.

이미 지난주말 이후 증권사 창구에는 기관투자가들의 환매요구를 받아주지 말라는 당국의 지시가 내려갔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로 당장은 금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래 끌기는 어렵다.

결국 근본적인 대책은 대우 회생방안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최소한 김우중 (金宇中) 회장의 경영권이 어찌되든 법인은 살아남을 것이란 믿음만은 회복돼야 한다.

그래야 대우 주식이나 채권을 가진 기관.개인.외국인들이 투신사나 증권사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굵직한 계열사를 하나라도 팔아 현금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채권단은 대우전자 매각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대우전자는 채권단 주도로 계열분리를 최대한 앞당길 방침이다.

대우그룹에서 떼어내 팔기 쉬운 '물건' 으로 만들어 놓자는 취지다.

㈜대우와 대우자동차를 제외한 계열사의 분리도 조기에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계열분리 과정에서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통해 경영권도 확보, 매각협상도 채권단 주도로 빠르게 진행하도록 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이헌재 (李憲宰) 금감위원장이 24일 제주도에서 열린 전경련 주최 세미나에서 "출자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대우 계열사의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면 기존 주주의 지분은 감자할 수도 있다" 고 한 대목은 매각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대우나 金회장의 지분을 감자, 채권단이 경영권을 장악토록 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 주목된다.

외국 채권단과 대우 해외부채의 재조정 협상을 하겠다는 대목도 달라진 정부 입장이다.

'해외 부채는 현지에서 해결해야 한다' 든가, '신규지원금 4조원이 해외 채권단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겠다' 는 정부 발표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정부나 대우가 빚을 갚을 의사가 없는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 채권자들이 대우의 추가 담보나 지급보증을 요구해올 경우 현재로선 대응책이 없어 이들을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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