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누가 가난을 구해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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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달초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만을 골라 근 1주일을 소위 '가난여행' 을 했다.

애팔래치아 산맥, 미시시피 델타, 동 (東) 세인트루이스시, 91년 폭동이 일어났던 로스앤젤레스의 와트지역 등 미국경제가 최대 호황임에도 30% 수준의 실업률과 주민의 30%가 최저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야말로 가난의 찌든 때를 벗지 못하는 이 지역을 대통령이 찾아간 것이다.

대통령의 관심은 당연히 이 소외된 지역의 경제회복이었다.

만년 재정적자에 시달리다가 경제호황 덕분에 역사상 최초로 1조달러의 재정흑자를 달성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제야 말로 소외된 이곳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며 마음을 먹고 나섰으니 그가 내놓을 청사진이 자못 궁금했다.

정부가 예산을 얼마 쏟아부어 이것을 세워주고 저것도 건설하고 주민의 복지는 이렇게 개선하고…하는 한국식에 익숙했던 기자는 클린턴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너무도 초라한데 놀랐다.

그는 이 지역 경제회복을 위해 예산을 얼마 늘리겠다는 식의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기업인들을 향해 "고정관념과는 달리 이 지역이 당신들의 경제활동을 하기에 그렇게 나쁜 지역이 아니니 이곳에 투자를 해 공장도 세우고 마켓도 만들어 보라" 는 것이었다.

수행한 장관들의 발표도 이 지역의 잠재적 경제수요가 몇백억달러이니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연구논문 비슷한 것이었다.

정부가 할 일이란 기업 투자자금 일부를 대부해 주고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그리고 인력훈련을 위해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가난여행' 의 주제는 기업인들을 어떻게 하면 이 지역으로 끌어들이느냐였다.

60년대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 라는 구호를 내걸고 '가난과의 전쟁' 을 선포했다.

그도 클린턴과 비슷하게 이 지역을 돌며 가난의 극복을 외쳤다.

그의 방식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각종 사회보장정책을 확대해 나가는 소위 복지국가 모델의 추구였다.

그러나 이 복지국가는 7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난 재정적자, 이에 따른 인플레.실업 등의 악순환을 거치면서 미국경제를 구덩이에 쳐 넣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빗대 "우리가 가난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가난이 승리했다" 는 말을 남겼다.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실패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다.

IMF관리체제아래서 우리는 시장경제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주 얘기한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자면 그것은 기업인, 그리고 기업인의 정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업가들이 투자의 모험심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일구면 이에 따라 일자리가 늘고 이윤의 일부는 세금이 돼 국가가 운영된다.

미국이 1조달러의 재정흑자를 낸 것도 정치인의 덕도, 관리의 덕도 아니다.

사업이 흥하면서 기업가도, 종업원도 모두 세금을 넉넉히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91년 워싱턴특파원 시절 당시 고르바초프와 부시 대통령의 미.소정상회담 취재차 백악관기자단 일원으로 모스크바를 간 적이 있다.

아직 공산주의는 유지되나 개방정책을 취하던 때여서 소련 기업인들이 막 생겨나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곳에서 기업가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강의했다.

"개인의 창의력으로 위험에 도전해 성공한 사람들을 착취자로 딱지를 붙여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착취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선반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

가난을 구해낼 사람은 위대한 정치인도 아니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재야인사도 아니요, 더구나 이데올로기 추종자도 아니다.

그 사람은 바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모두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업인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런 사업가들의 존재를 얼마나 존중해 주고 아껴주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재벌개혁이라는 큰 일을 진행중에 있다.

우리 재벌의 폐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 식의 재벌은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

그러나 이 재벌개혁이 기업인 죽이기, 기업가 정신 옥죄기로 나가서는 안된다.

더욱이 부 (富) =불의 (不義) , 빈 (貧) =정의 (正義) 라는 등식이 판을 치는 분위기로 확대돼서도 안된다.

혹시 정부의 여러 실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 한 방편으로 이런 일들이 진행된다면 나라장래는 더욱 암울해진다.

사람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있는 자,가진 자에 대한 시기심.미움을 확대시켜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바로 민중주의 (populism) 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평화도 아니요, 번영도 아니요, 결국 공멸 (共滅) 의 길이기 때문이다.

문창극 美洲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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