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그린벨트 정비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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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건설교통부가 지난 7월 초순 그린벨트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71년 제도를 도입한 이후 27년간 그린벨트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지엽적인 개선에만 머물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정책시각에서 벗어나 근본적 개선책을 찾아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돋보인다.

이번 제도개선책의 주요 골자는 첫째, 그린벨트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제도 자체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방지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보호를 위해 계속 유지하며 둘째, 당초 설정취지에 비춰 보전가치가 낮은 지역은 해제하고 존치지역은 보다 철저히 관리한다.

셋째, 규제완화.토지매입 등을 통한 주민의 재산권 피해를 최소화하며 마지막으로 해제지역에 대한 개발이익환수와 난 (亂) 개발 방지로 돼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상대로 환경단체의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즉 그린벨트가 줄어들면 도시가 팽창하고 환경이 크게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는 개발은 곧 환경오염이란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환경훼손과 도시의 황폐화는 그린벨트가 아닌 녹지 (농경지.임야)가 매년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이르는 1천5백만평씩 도시용지로 전용되고 있는 데서 일어나고 있다.

조사결과 그린벨트의 약 4분의1 이상이 환경보전목적과 상관관계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번 제도개선으로 이들 토지가 체계적으로 개발될 경우 주택이나 공장건설을 위한 기존 녹지나 농지의 훼손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린벨트 제도개선은 환경오염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개선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이번 정부의 개선책에 두드러지는 점은 '선 계획, 후 해제' 원칙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환경보호와 도시공간의 효율적 활용에 입각해 계획적으로 개발이 이뤄지면 보전가치가 큰 녹지지역은 그린벨트 조정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며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원초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경우 녹지나 도시외곽지역을 개발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홍콩에는 경사도 20~25도에 이르는 도시 내 산기슭에 아파트가 많이 지어져 있으며 공기가 맑고 또 전망이 좋아 최고가에 분양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콩의 해상공원도 산 정상에 건설돼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최고급 주택지는 바다가 보이는 울창한 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캐나다의 경우 산속 호수주변에 그림 같은 호텔이 잘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토지활용이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수시설.쓰레기 처리시설 등 환경오염 방지시설을 철저히 갖추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제도개선의 큰 의미는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에서 찾아야 한다.

방글라데시.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에게 좁은 국토를 넓게, 그리고 골고루 활용해야할 필요성은 그 어느 나라보다 크다.

그럼에도 우리의 도시용지는 전국토의 4.8%에 불과하다. 비슷한 국토여건을 가진 일본의 도시용 토지는 국토의 7.1%, 대만은 5.9%, 그린벨트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영국은 13%나 된다. 상대적으로 우리가 토지를 좁고 경직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땅값이 비싸고 집값.사무실 값이 높고 따라서 생산원가와 상품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발생되는 높은 물가와 임금수준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근본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의 국민총생산 (GNP) 대비 총지가는 5.4배로 미국 (0.7배).영국 (1.6배).일본 (3.9배) 보다 월등히 높아 상대적인 토지가격부담을 알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토지공급량을 늘리면 장기적으로 토지가격이 떨어진다.

따라서 그린벨트를 합리적으로 정비해 경제성 있는 도시용지를 추가로 공급하는 정책은 땅값의 하향안정과 물가.임금.생산가격을 낮추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흔히 그린벨트의 문제를 그 지역주민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제도가 개선돼 도시경쟁력이 커지고 땅값.집값이 떨어지고 경제가 활성화된다면 이는 전국민이 혜택받는 일이다.

혹자는 정부가 정치적 공약을 이행하려고 무리하게 그린벨트조정을 추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린벨트 제도개선이 바로 환경오염과 도시훼손이란 무조건적인 등식의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번 그린벨트 개선안을 접한 지역주민들의 말이 생각난다. '이제 정말로 그린벨트가 정비되려나?'.

강승필 <美일리노이대 객원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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