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축구 실직자 '똘똘' 공포의 외인구단 강릉시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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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아마 축구에 '공포의 외인구단' 이 나타났다. 지난 5월 6일 창단해 첫 전국대회에 나선 강릉시청이 울산에서 벌어진 현대 미포조선배 전국 실업축구대회 결승에 진출,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것도 천안 일화.전북 현대 등 쟁쟁한 프로 2군팀을 예선에서 꺾고 아마 최강 서울시청마저 준결승에서 제압했으니 보통 '사건' 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수 전원이 축구판에서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 철저한 무명이라는 점이다.

강릉시청은 순수 직장축구팀. 감독 겸 코치를 맡고 있는 박문영 (37) 씨가 대학 졸업선수나 제대한 '축구실직자' 11명을 거둬들여 창단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해체된 한일생명 출신 3명, 수원.전남.천안 등 프로축구팀에서 자유계약선수로 밀려난 3명을 끌어들여 팀 모습을 갖췄다.

박감독 자신도 강릉농공고를 거쳐 호남대 2년까지만 선수생활을 한데다 지도자 경험은 전혀 없는 '완전 초보 지도자' 다. 현 직급은 강릉시청 도시행정과 기능직. '외인구단' 답게 이들 돌풍의 진원지는 정신력이다.

여기서도 살아남지 못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고된 훈련을 감내케 하고 경기에서 한발짝이라도 더 뛰게 만들었다.

쪼들리는 살림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강릉시청 축구팀은 어느새 '축구도시' 강릉의 자랑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울산 =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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