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아버지와 'IMF 이별' 초등생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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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엄마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집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제주 도남초등학교 2학년 문승현 (9) 군이 며칠전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2장과 편지를 중앙일보에 보내 왔다.

文군은 "목재상을 하던 아빠가 문을 닫고 서울로 돈벌러 가셨습니다.

아빠가 중앙일보를 보시는 분이라 혹시 일하시다가 신문을 보시면 용기를 얻지 않을까요" 라며 편지보낸 이유를 설명했다.

"잠꾸러기인 동생은 아빠가 없으니까 일찍 깨어나고 동네 아이들하고도 잘 안놉니다. 엄마가 손을 데고 저는 결석.조퇴 한번 안했으나 열이 많이 나 병원에 갔다온 적이 있습니다. "

文군은 간간이 엄마에게만 전화하는 아빠에게 안부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방문을 닫고 우시는 걸 봤는데 엄마가 울면 제가 남자니깐 보살펴 드릴게요" 라며 집안 걱정은 하지 말라는 어른스러움도 내비쳤다.

또 "신문과 TV에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도 보이고, 어린이들이 야영할 시설을 튼튼하게 짓지도 않았는데 허가해줘 사고가 나고, 재벌 할아버지 금강호 이야기도 나오고, 대통령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자유상을 받고,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 나오지만 IMF는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가요" 라며 요즈음 사회 분위기를 질타했다.

文군은 "제가 책을 많이 읽어 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니까 그때는 우리처럼 헤어져 사는 가족이 없게 노력할게요" 라고 다짐했다.

"엄마가 가르쳐주는 일본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빠 사랑해요. "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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