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아의 재도전] 8.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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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베이징 (北京) 서남쪽 5백㎞ 지점에 위치한 허베이 (河北) 성 한단 (邯鄲) 시. 시가지 곳곳에 쌓인 철근과 시멘트더미. 낡은 건물을 헐고 고층빌딩을 올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요란한 망치질 소리는 한단강철 (邯鋼) 이 위치한 푸싱 (復興) 로에 이르자 절정을 이룬다.

'한단강철을 배우자' .국유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한강 (邯鋼) 을 본받자는 메아리가 물결친다.

"79년 31만t이던 강재 생산량이 지난해엔 10배가 넘는 3백44만t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순이익도 5억4백만 위안 (약 6백55억원) 을 기록, 업계 2위를 차지했지요. " 한강 당위원회 선전부장 왕청쥔 (王成君) 의 자랑이다.

한강의 성공 비결은 무얼까.

"시장개념을 도입한 게 주효했습니다. " 리화푸 (李華甫.68) 부총경리의 설명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한 힘도 이 시장개념입니다. 직원들에게 시장의 압력을 직접 느끼게 하는 데 성공,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 한강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대대적인 원가절감에 나섰다.

"하루는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어요. 작업이 끝난 뒤였지요. 불을 켜달라는 요청을 직원이 거절했어요. 불을 켜면 몇 위안 정도 원가가 더 올라간다는 이유였지요. " 이같은 '한강의 기적' , 즉 시장개념을 배우라고 중국 당국이 이 회사에 파견한 전국 국유기업 간부가 13만명을 헤아린다.

중국 경제의 성패가 바로 이 국유기업 개혁의 성공여부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당국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금융 안정. 아시아 금융위기의 직접적 여파에 맞서 부실 금융기관인 광둥 (廣東) 국제투자신탁공사를 국제사회의 비난에 아랑곳없이 폐쇄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고비를 넘겼다.

이어 올해 중점 타깃이 바로 국유기업의 개혁. 8조7억위안의 금융기관 대출 중 국유기업 등 중국 국유경제가 떠안고 있는 부분이 60%다.

10만이 넘는 국유기업들 중 절반 가량이 부실로 신음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국유기업의 개혁성공 없이는 금융안정도 없다는 것이다.

주룽지 (朱鎔基) 총리는 지난해 3월 앞으로 3년내 국유기업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쉽지가 않다.

중복투자가 워낙 많은데다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원감축이 난제 중 난제인 것이다.

운전기사만 4천명이 넘는 베이징 최대의 국유 택시회사 서우치 (首汽)에 다니던 장리빈 (張栗賓.38) 은 요즘 쉬고 있다.

"잠깐만 쉬라는 게 벌써 석달째" 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매달 3백50위안의 보조금을 받지만 이 돈으론 초등학생 딸의 한달 잡비를 대기도 힘들다.

모아둔 돈이 있는 張은 그래도 다행이다.

지난 6월 2일 상하이 (上海)에서 샤먼 (厦門) 으로 향하는 여객기 안에선 어설픈 범죄극이 벌어졌다.

하이재킹을 시도했던 궈위 (郭宇.30)가 보안요원에 붙잡힌 것. 동기는 실직. 병원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다 쫓겨난 郭이 저지른 '실직범죄' 였다.

이같은 실직범죄는 현재 중국의 치안을 위협하는 큰 두통거리다.

올들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17건의 폭탄테러 대부분이 실직에서 비롯된 자포자기성 범죄였다.

중국 당국이 밝히는 샤강 (정리휴직) 노동자 수는 8백92만명. 그러나 유명 경제학자 후안강 (胡鞍鋼) 박사의 말은 다르다.

"실제 실업자수는 1천5백만~1천8백만명에 이른다" 는 주장이다.

이는 물론 농촌 실업자 1억6천여만명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중국 당국은 실업자에 대한 해법 역시 시장에서 찾고 있다.

비공유제 기업을 허용, 사영기업들이 이들을 흡수케 하는 방법이다.

올해 34세인 내몽골의 린사오장 (林少江) .지난해 실직한 그는 전재산을 털어 양계장을 한 게 성공했다.

이제는 같이 실직했던 동료 5명을 직원으로 고용, 사영업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중국의 사영기업이 지난 한햇동안 창출해 낸 일자리 수가 3백53만개. 이제 계획경제를 대신해 시장경제가 중국인들 밥그릇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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