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명곡20]20.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오퍼토리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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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주여 나를 작곡가로 만들어주신다면 어떠한 고통도 참아내겠습니다.

" 2차대전후 소련 타타르 지방 출신 소녀가 들판에 꿇어 앉아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 가장 주목받는 러시아 작곡가가 됐다.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68)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할 때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말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너의 '잘못된 길' 을 계속 가라. " 소련 당국이 제시한 '모범' 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고집했던 그녀는 한동안 소련에서 공식 연주가 금지된 적도 있었고 모스크바 전자음악스튜디오에서 1년간 일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해왔다.

그의 출세작 '오퍼토리움' 은 러시아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에게 헌정한 곡. 바흐의 '음악의 헌정 (獻呈)' 에서 테마를 따온 것이다. 여기에 안톤 베베른 (1883~1945) 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음색의 변주를 시도했다.

81년 5월30일 빈에서 오스트리아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됐으며 수정본은 82년 9월 베를린에서 독일 청소년 교향악단 (지휘 샤를 뒤투아) , 최종 완성악보는 86년 11월2일 런던에서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지휘의 BBC심포니의 연주로 초연됐다. 협연은 기돈 크레머가 도맡아 했다.

85년 소련 당국이 처음으로 그녀의 서방 여행을 허락한 후부터 뉴욕필.시카고심포니 등에서 앞다투어 작품을 위촉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정교의 성가와 극단적인 아방가르드 음악이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표현력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국적인 타악기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음색을 추구하는 그녀의 음악은 현실과 영적인 세계를 잇는 사다리와같은 신비로운 힘을 느끼게 한다.

◇ 추천음반 = ▶바이올린 기돈 크레머, 샤를 뒤투아.보스턴심포니 (DG.89 쿠세비츠키 국제음반상 수상) ▶바이올린 올레 크리사, 제임스 데프리스트.스톡홀름필하모닉 (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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