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 특별지원금 1회용 '눈먼 돈' 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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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연예술에 대한 국고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인가.

정부가 IMF이후 고사 (枯死) 위기에 처한 공연예술계를 20억원의 특별지원금을 문예진흥원을 통해 긴급 '수혈' 했으나 지금까지 문예진흥기금의 폐단으로 지적돼온 소액다건주의를 확대 재생산했을 뿐 인프라 구축이나 창작 진흥과는 거리가 멀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원 대상은 음악 (7억1천만원) , 연극.뮤지컬 (7억7천5백만원) , 무용 (4억6천만원) 분야의 46편. 진흥원이 국고 지원을 공고한 것은 지난 3월10일. 접수마감은 3월말까지였다.

20일만에 공연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대본.악보는 '계획서' 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다.

심사위원들의 대본.악보에 대한 질적 평가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오페라의 경우 개막 직전까지 오케스트라 편곡 악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게 다반사. 창작 초연이 명분은 좋으나 결과적으로는 '1회용 졸속 작품' 만 양산한 것이다.

창작초연인 광주 빛소리오페라단의 '무등둥둥' (8천5백만원) , 베세토오페라단의 '백범 김구와 상해 임시정부' (1억2천만원) , 코레콤의 '매직 텔레파시' (8천5백만원) ,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사랑의 빛' (5천만원) 등이 지원금을 받았다.

대부분 현대사의 인물들에 대한 추모행사의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초연됐던 오페라 '성웅 이순신' 처럼 '관변예술' 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또 대부분이 창단 후 첫 공연들이다.

평균 유료관객 3백38명에 불과한 공연도 있었다.

'통일천년' '그, 불' '조선왕신의…' 등 연극.뮤지컬 분야의 지원작품도 역사물이 대부분. 관객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애국심 고취형 예술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국고 지원을 겨냥한 작품 기획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지원금을 많이 타기 위해서는 작품의 규모가 클수록, 영웅이나 애국지사를 다룬 작품일수록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관현악.실내악.합창 분야도 창작곡 한편을 구실 삼아 지원금을 받는 '해묵은 수법' 들이다.

작곡자에게 돌아가는 작품료는 지원금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관료 등 경상 제작비를 충당하기에 바쁘다.

관변 예술에 대한 국고 지원은 기업협찬을 낳는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마사회 기금 (연간 12억원) 도 공연계의 공공연한 '눈먼 돈' 이다.

기업협찬을 따내기 위해 정치권 인맥을 동원하는 기술은 IMF 이전보다 더 정교해졌다.

뮤지컬 '명성황후' 는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주마가편 (走馬加鞭) 이라는 말이 있다.

경쟁력있는 작품과 단체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 소액다건주의는 '우는 아이 젖주듯' 일시적 미봉책은 될지 몰라도 공연사에 빛나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낳을 수는 없다.

차라리 각 분야 한 작품씩이라도 제대로 집중 지원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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