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길어지는 무료급식 줄 왜 못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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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민들의 고통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취업난.카드빚에 몰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가정은 파괴되고, 자식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자신은 길거리 노숙인으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근 서울역 앞 무료 배식소 등에는 식사 때 몰리는 노숙인.실업자.노인들이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한 곳에서 한번에 300명분을 준비해도 순식간에 동이 난다는 것이다. 워낙 밥을 많이 하는 바람에 밥짓는 기계가 고장난 곳도 있다.

또 카드빚에 몰려 도망갔다가 금융기관 등에 의해 주민등록이 말소된 '무적(無籍)시민'도 3년새 7만명이 늘어 58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그것도 주로 20대, 30대가 많이 늘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빚 때문에 부랑자가 돼 어둠 속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인가. 은행 빚 못 갚아 경매에 넘어간 서민주택이 급증하고, 실업급여 대상자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기침체의 후유증이 가시화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활로가 안 보인다는 데 있다. 이미 신용불량자가 된 400여만명 외에 사실상의 신불자도 수백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내수부진으로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한국 경제 전망은 하나같이 어둡고 답답한 것뿐이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하면 우리 사회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노숙인들은 희망을 잃고, 범죄에 노출되면서 사회 불안요인이 된다. 정부는 이들이 절망의 구렁에서 헤어나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민등록 말소 자격을 제한하는 등 제도적 보완도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도 이들을 돕는 데 나서야 한다.

근본 해결책은 경기회복뿐이다. 여당 일각에서 뒤늦게나마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나서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 이상 말로만 하지 말고 한번이라도 서민들의 처참한 현장에 가보라. 그러면 자신들이 해야할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 해답이 바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