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재도전] 6. 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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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타이베이시 뤄쓰푸 (羅斯福.루스벨트)가에 자리잡은 대만 경제부 산하 중소기업처는 시장통 같은 분위기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기 짝이 없다.

이곳의 특징은 '돈을 쓰는 분위기' 라는 점. 입구의 장식부터 요란하다.

대형 전광판에 '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 이라는 글씨가 계속 점멸한다.

정문 바로 옆에는 중소기업 창업절차 등을 안내하는 무료 간행물이 그득하다.

창업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허창린 (何長霖.44) 은 "기본적인 정보는 다 얻었다. 이제 창업스쿨에 등록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리창이 (黎昌意) 중소기업처장은 "실질적인 도움이 중요하다.

돈을 대주는 것보다 사업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 이라고 강조한다.

이곳에 개설된 강좌의 특징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강사로 초빙된다는 점.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강의가 장점이다.

중소기업처가 이런 일들로 매년 쓰는 돈만 해도 무려 10억 신대폐 (약 4백억원)가 넘는다.

타이베이시 더후이 (德惠)가에 위치한 대만경제연구원은 대만 정부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다.

연구소내 핵심인 재정금융팀장 둥루이빈 (董瑞斌) 박사는 "아시아 금융위기는 대만에 오히려 기회였다" 고 평가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수출이 줄고 성장률이 떨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불량기업과 부실체질이 걸러지는 효과를 누렸다는 분석이다.

董박사가 지적하는 대만의 성공비결도 역시 중소기업이다.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닭의 머리가 되겠다' 는 대만인들의 창업정신이 정부 지원정책과 맞아떨어지면서 대만의 부를 이루는 밑천이 됐다는 얘기다.

대만의 약점으론 으레 '피난민 체질' 이 꼽힌다.

대만 헌법상 수도는 아직도 중국 난징 (南京) 이다.

중국 전체는 '미수복지구' 고, 대만은 피난지다.

피난지에 돈을 쏟아부을 바보는 없다.

그러나 최근 대만인들의 체질이 달라지고 있다.

삼성물산 타이베이 지점 김성훈 (金成勳.42) 지점장은 "한탕주의가 아닌, 장기적인 사업에 점차 눈을 돌리고 있다" 고 말했다.

대만이 피난살이에서 '제집살이' 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은 첫 본성 (本省.대만) 출신 총통이 집권한 90년부터. 당시 리덩후이 (李登輝) 신임총통은 '대만은 우리집 (臺灣是我家)'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첨단과학공업단지인 신주 (新竹) 과학공업원에 대한 투자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이같은 '제집살이 움직임' 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 대만 정부의 판단이다.

현실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타이베이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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