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아그라 오.남용 걱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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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몇해 전 비아그라 개발 소식은 우리 의료계의 지대한 관심을 끈 바 있었다.

비아그라의 개발 개념 및 발상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논리와 학문적 접근방법에 매료된 바 있었다.

이는 인삼을 포함한 우리의 고정관념적인 '양기' 를 높이는 차원의 정력제로서가 아니라 발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생식기 평활근 이완의 전령물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혈관이 확장, 혈류량 (血流量) 이 증가됨에 따라 발기부전증을 극복하겠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우리 신체내 혈관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기관이 남자의 생식기만이 아니라 심장.콩팥과 같은 기관도 있는데 특정인자가 어떻게 생식기내의 혈관주변 평활근 세포만을 자극할까 하는 것이 학문적인 측면에서 궁금한 부분이었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비아그라가 시판돼 많은 환자에게 치료제로서의 효력이 입증되면서 현대의학의 새로운 총아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염려했던 부작용, 즉 개발자가 원하는 대로 약물이 성기내 해면체 평활근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혈관 평활근에도 영향을 미쳐 이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게 된다고 한다.

물론 다른 약물 복용때도 가려움증.두드러기 또는 현기증 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정상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아그라의 경우 심혈관계 질환에 따른 급사 (急死) 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중시해야 한다.

이처럼 비아그라 약품 부작용의 형태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데도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보건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 약품을 오.남용 (誤濫用) 우려약물로 지정 고시한 후 약국판매를 허용할 것이라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기관의 이름이 표방하듯 약품이 가질 수 있는 해로움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기관인데 이익단체들 로비의 강.약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매우 걱정스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하려 할 때 진실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지 또는 책임회피를 위한 안전장치로서 그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개발의욕을 꺾기 일쑤이고, 소위 선진국에서 개발된 약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개선.개발하려 할 때도 그 또한 얼마나 까다롭게 행정력을 동원했던가.

그런데 이번 비아그라의 약국을 통한 시판은 당국이 '선진국의 예' 를 무시하고 대한약사협회의 주장에 치우치는 것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느 선진국에서 약국판매가 허용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대한비뇨기과학회나 의사단체가 부작용을 들어 비아그라 약품의 약국을 통한 시판에 반대하는 것을 단순히 집단 이기주의적인 발상 수준으로 본다면 훗날 당국은 예기치 못한 책임문제에 봉착하리라 믿는다.

더군다나 서글픈 우리의 심정을 가눌 길 없게 만드는 것은 다국적기업이며 세계적으로 제약업계의 선두주자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약회사 파이저사가 우리나라에서는 비아그라 판매실적의 극대화를 위해 약국판매를 권장 또는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자부하는 제약회사가 국가별로 아주 다른 윤리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신뢰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국민과 의료계를 업신여기는 자태에 분노마저 금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 약국을 통한 비아그라 시판을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묻고 싶고 이 질문을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에도 던지고 싶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주눅든 주인의식이 이번 비아그라에 의해 다시 '발기'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李成洛 아주大醫務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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