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은실이' 6일 종영…빛나는 조연 'IMF민심'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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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6일 종영하는 SBS '은실이' 의 '성공' 은 반갑다. 60년대를 배경으로 '그때 그 시절' 얘기를 처음에 끄집어낼 때만 해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화려하지 못한 화면에다 '된장국' 처럼 은근히 우러나는 이야기는 선뜻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방송사에서 드라마의 '안전장치' 로 통하는 요소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뜨는 연기자를 캐스팅하지도 않았고 몇 번쯤 비비꼬아 시청자들의 조바심을 태우는 삼각관계도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소재와 전개방식이 새로울수록 위험부담은 커진다. 방영 초기 '은실이' 가 고전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방영횟수를 거듭하면서 시청자들의 '입맛' 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청자를 따라가는 드라마보다 시청자가 끌려오는 드라마를 만들겠다" 는 이금림 작가의 '뚝심' 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은실이' 의 매력은 무엇보다 '촌스러움' 에 있다. 60년대란 시대적 배경과 경기도 '화산땅' 이란 가상의 공간이 버무려 내는 정감 어린 분위기가 그것이다. 시장 골목과 국밥집이 있고, 그 속에 '자이언트' 등 옛 영화가 걸려있는 '화산극장' 이 있다.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라고 손바닥을 치는 시청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드라마를 통해 아버지 세대를 만나기도 했다. 안방에서 '고향' 냄새에 취했던 셈이다.

'은실이' 의 캐스팅도 주효한 대목. 사실 너나 없이 스타 캐스팅에 매달리는 게 지금의 드라마 풍토다. 하지만 '은실이' 는 달랐다. 3년만에 연속극을 맡은 원미경을 비롯해 대부분의 출연진들도 '스타' 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여기서 '안타' 가 터졌다. 여기저기 포진한 조연들이 저마다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이 빛을 발한 건 작가의 따뜻한 인간관이 드라마 전체에 깔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은실을 구박하던 옥자도, 극장을 빼앗은 박사장도, 허구한 날 빈둥거리는 낙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연출력이다. 극장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압권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본 뼈대는 작가의 대본을 따르되,덧붙이는 살은 아예 연기자에게 맡겼다는 것.

실제로 극장일을 한 경험이 있는 이재포 (허주임역) 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극장 '똘마니' 들이 나름대로 애드립을 더하도록 한 열린 연출방식이었다.

오랜 만에 만난 사람냄새 폴폴 나는 드라마. '은실이' 의 종영은 그래서 더욱 아쉽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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