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차관급 회담 이모저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여곡절 끝에 22일 오전 10시15분 시작된 베이징 (北京) 남북 회담은 서해 교전사태에 대한 입장 차이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북한측 박영수 대표단장이 남측에 "서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죄하라" 고 요구했다고 북한 평양방송이 보도하면서 현장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졌다.

남북한은 양측 수석대표의 기조발언 (북한은 기본 발언) 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으나, 평양방송이 이를 깨고 발언을 공개했기 때문.

◇ 회담 = 양측 수석대표 (단장) 는 비료 수송과 회담 지연 배경이 된 날씨를 화제로 환담하며 상대 입장과 전략을 탐색. 북측 박영수 단장이 먼저 "날씨가 3일만에 맑아졌다" 고 하자 우리측 양영식 수석대표는 "지금 비는 좋은 것이다.

남북대화의 싹도 이 비에 촉촉히 적셔져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고 언급. 그러자 朴단장은 "이 비가 잘못하면 장마비로 연결되겠다. 보리장마라고 하지 않느냐" 고 말을 받았다.

◇ 북측 기조발언 공개 = 회담이 끝난 뒤 이날 오후 7시 북한이 평양방송을 통해 차관급 회담의 기조발언 내용을 전격 발표하자 이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 통일부 관계자들은 "기조발언 내용을 서로 공개하지 않키로 한 것 아니냐" 며 방송 보도를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 북측 단장 직책 = 박영수 북측 대표단장은 내각직속 '책임참사' 직책을 갖고 나왔다.

북한의 대남 관련자들이 사용하는 내각 책임참사 직함은 '실체 없는 명함용' '대외용' 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80년대 초반까지 내각 전신인 정무원에 차관급에 해당하는 참사를 3~4명 두고 내부업무를 관장해 왔으나 80년대 중반 이 직제를 대부분 없애버린 바 있다.

○…박영수 단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은 회담시간에 맞춰 9시58분 켐핀스키 호텔 입구에 도착해 우리측 안내를 받았다.

검은색 정장차림의 朴단장은 회담전망 등을 묻는 기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않은 채 곧장 엘리베이터로 2층 회담장으로 올라갔다.

朴단장은 1백여명의 취재진과 카메라에 밀리면서도 웃음과 여유를 보이려 애쓰는 모습.

朴단장은 "생각보다 기자가 많아 혼란스럽다. 들어올 때는 옷이 찢기는 줄 알았다" 며 언론취재에 신경쓰는 표정. 朴단장은 회담장을 떠나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우리측 대표를 가리키며 "이리로 물어보라" 고 피하는 등 말을 상당히 아꼈다.

북한 노동신문 1명과 중앙통신 2명 등 베이징 특파원 3명도 나와 회담광경을 지켜봤다.

○…지난해 차관급회담에서 북한측이 우리 방송사의 무선마이크를 문제삼아 '도청논란' 을 벌였던 때문인지 올해는 회담장 보안검색이 부쩍 강화됐다.

우리 대표단은 회담 시작에 앞서 회담장 안팎과 화분.테이블 밑 등을 꼼꼼히 검색하고 수행원에게 비표를 달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북한측도 수행원 한명을 회담시작 10분 전에 보내 회담장 위치와 부속시설을 파악했다. 북한 수행원은 "벽에 걸려있는 화분을 치워달라" 고 요청했다.

○…지난 3일 비공개접촉시 북측대표였던 전금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평양에 돌아가면 차관급회담 시작 전까지 합의사실을 노동신문과 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반드시 알릴 것" 이라고 약속했으나 결국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회담 관계자가 귀띔.

○…통일부는 북한 평양방송이 이날 오후 7시부터 평양방송을 통해 이날 베이징에서 열렸던 남북 차관급회담의 북측 기조발언 내용을 갑자기 발표하자 발언 의도에 대해 다각적 분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

통일부 관계자들은 일단 "기조발언 내용을 서로 공개키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 며 북측의 방송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다른 한 관계자는 "발언 전체를 발표치 않고 요지만 발표한 것으로 볼 때 뭔가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며 "특히 방송 첫머리에 지난 15일 서해 교전사태를 집중 거론한 것으로 봐 회담에 임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

통일부는 북한 방송을 청취하는 정보자료담당실에서 평양방송이 시작된 뒤 바로 녹취에 들어가 1시간여 작업 끝에 방송내용 전문을 신속히 관계 기관들에 배포.

한 담당관은 "방송내용 처음에서 끝까지 서해 교전사태를 문제삼고 나오고 있다" 며 "발언 끝부분에 서해 사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다음 회담도 없다고 말한 것이 심상치 않다" 고 평가.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