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특파원 동티모르 독립지도자 구스마오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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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독립운동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 (53) .91년부터 수감중인 그는 지난 1월 수도 자카르타 시내 한 특별감호소로 옮겨 계속 구금 중이다.

그러나 접견실과 작은 마당이 딸린 50평짜리 단독주택에서 외출만 못할 뿐 비교적 자유 (?) 롭게 지내고 있다.

오는 8월 8일 치러질 동티모르 독립 결정 선거를 앞두고 요즘 이곳에선 유엔관리를 비롯, 인도네시아 정부관계자.해외자문단 등이 연일 찾아온다.

회의를 거듭하며 평화적 선거를 위한 묘안 찾기로 분주하다.

이 때문에 구스마오는 무척 바쁘다.

인도네시아 법무부를 통해 정식 접견허가를 받았지만 세번째 방문에서야 비로소 구스마오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단 10분간만'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러나 정작 인터뷰는 무려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비서가 계속 눈짓을 해댔지만 구스마오는 이를 묵살했다.

- 요즘 생활은 어떤가.

"태어나서 최고로 바쁜 것 같다. 옛날 프레틸린 (무장독립조직)에서 일할 때보다 곱절은 일한다. 매일 50여명 정도의 인사와 만난다. 모두 레퍼렌덤 (독립결정투표) 때문이다. 어제도 유엔대표와 무려 8시간동안 얘기했다.

물론 인도네시아 정부 관리들과도 만난다. "

- 주로 무슨 얘기를 나누나.

"안전하게 투표를 치르는 방안에 관한 것이다. 사방에 뇌관투성이다. "

- 자세하게 얘기해달라.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른바 친정부 게릴라들이 문제다. 이들은 레퍼렌덤이 결정된 뒤에도 끊임없이 유혈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대낮에 치밀한 정탐조직을 가동해 정보를 캐낸 뒤 한밤중에 '극렬 독립분자' 로 지목된 가정을 급습하는 식이다. 유혈사태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

- 동티모르 주민이나 프레틸린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얘긴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우리쪽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으로 보복하고 있다. 그러니 문제다. 만일 이같은 피의 윤회가 계속될 경우 자연 '투표 연기론' 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친정부파가 노리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기도하고 있다. "

- 그렇다면 적들만이 아니라, 동지도 달래야 하는 상황인데.

"바로 그 점이 더욱 어려운 점이다. 동지들에게 남은 것은 독립을 향한 열정뿐이다. 이들은 독립을 저지하려는 세력은 원수로 단정하고 가차없는 보복에 나선다. 이들을 말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이들을 위로하고, 주변정세를 보는 눈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일, 이것이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주요 작업이다. "

- 동티모르가 독립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달라.

"간단하다. 모든 게 다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전체가 거대한 다인종 국가인 만큼 인종이 다르다는 얘기는 빼겠다. 그러나 우리는 인도네시아 전체와 전혀 다른 나라다. 언어도, 풍습도, 종교도 모두 다르다. 그간 우리가 받은 학대는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 길은 오직 독립뿐이다. 이는 인도네시아에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동티모르는 아무 자원도 없는 평범한 산림지역이다. 인도네시아가 잃을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다 할 수 있다. "

- 동티모르의 독립 이후 청사진을 공개할 수 있나.

"나는 독립 이후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

- 이해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이번 세기 들어 독립한 국가들을 보자. 모두 투쟁기의 지도자들이 독립국가의 수반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국가를 거대한 부패와 권위의 덩어리로 만들고 말았다. 나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투쟁시기의 지도자' 일 뿐이다.독립 이후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독립국가를 이끌게 될 것이다. "

-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당신만한 결집력을 지닌 인물이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작정인가.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뒤에서 도울 것이다. 인물은 키우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인물이 아니라 조직이다."

- 현재 동티모르는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서 얻는 가장 큰 도움은 무엇인가.

"교훈과 우정이다. 특히 당신은 나를 찾아준 첫번째 한국 기자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의 광주 (光州) 도, 한국인이 걸어온 민주화의 길도 알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 동티모르인들이 멀리 있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꼭 전해달라. "

- 당신은 우수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나쁜 아버지' 라는 말도 들린다.

"맞는 얘기다. 24년간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다. 애들 엄마가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나는 아이들 얼굴을 볼 자격이 없는 아빠다. "

(구스마오의 부인과 아들.딸은 75년 인도네시아가 무력으로 동티모르를 27번째주로 합병했을 때 호주로 망명했다. )

살렘바 특별감호소 (자카르타)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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