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4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제9장 갯벌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꾸려 가고 있다는 쭝웬제의 상가를 찾아간 것은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상가에는 식당과 옷가게와 잡화가게들이 산만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점포에 전시된 의류들은 대다수 한국에서 수입해 간 것들이었다.그러나 의류가게 역시 한국의 경제침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원래는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옌지의 젊은 여성층을 겨냥해서 낸 고급 옷가게였는데, 한국의 경제침체에도 영향을 받은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데없는 금강산 관광붐이 일어나고부터 옌지의 한국특수가 찬서리를 맞은 것이었다.

옌지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의 수효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들의 씀씀이도 예전처럼 헤프지 않았다. 침체의 그늘은 옌지의 소비경제 곳곳에도 주름살을 안겨 준 것이 틀림없었다.

옷가게의 매상이 줄어들자, 그녀는 궁여지책으로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저가의 의류들을 구색 맞춰 들여놓았다. 가게 치장도 다시 했다. 기둥이나 창틀은 모두 붉은색 페인트칠을 하고 기둥마다 빨간 빛 수구로 장식했다.

붉은 빛 도료는 멀리서도 고객들의 시선을 끌만했다. 중국인들은 붉은 색을 좋아한다. 전통적으로 상서로운 색깔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그 색깔에 우호적이었다. 중국인들의 생활에 붉은 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그런 전통인식이 뿌리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출은 회복될 기미가 없어 보였다.

가게 여기저기를 돌아보던 태호는 그녀에게 말했다. "밖에서 가게를 유심히 관찰해 본 적이 있습니까?" "물건은 점포 안에 진열되어 있는데, 밖에서 가게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요?"

"그 말에도 일리는 있네요. 그러나 가게의 매상이 잘 될 때 왜 가게가 잘 되는가를 반복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그런 세심한 검토가 매상이 떨어질 때, 매상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가르쳐줄 수도 있겠지요. "

"나도 자고 일어나면 걱정이 그건데요. " "근처에 노점상들이 없는 걸 보면 목이 좋은 곳이라 할 수는 없겠네요. 노점상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목이 좋은 곳일 수 있겠지요. 다리 근처에는 노점상들이 여럿이던데?" "그렇지만, 이 가게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어요. "

"중국사람들이 옛날부터 따뜻한 감을 주는 붉은 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붉은 색을 자칫 잘못 사용하면 텁텁하고 어두운 색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명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닐 차양 역시 시커멓게 낡아서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가게 전체가 공연히 어둡고 불결하다는 기분을 줍니다. 가게를 내실 적에 손님이 보는 것은 우선 밖이라는 간단한 이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눈치채겠습니다만, 선택에 신중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점포 안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어요. 밖을 보세요. 바로 문 앞 정면에다 시들어 가는 화분을 내놓았고, 빗자루나 걸레 같은 것을 문 옆에 두고 있는데 그런 사소한 것이 뜻밖에도 가게의 이미지를 어둡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요. "

"정결하게 관리한다는 게 그래요. 손님들도 그다지 불결하게 생각 않는 것 같고. " "말은 않겠지만, 손님들의 인상에는 남아있게 됩니다. 손님이 들지 않으면 대청소를 해 보라는 말도 있지요. 청소를 해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유행에 뒤떨어졌거나 색 바랜 상품을 오랫동안 좌판에 올려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뜻밖에 팔기가 좋은 상품이 그늘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도 발견할 때가 많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가게에선 별 소용도 없는 가재도구나 잡동사니들을 너절하게 늘어 놓아서 손님들의 시선만 혼란시킨 것도 발견하게 되겠지요.나는 한국에서 장돌뱅이로 노점상이지만, 시골장을 돌면서도 배울 것은 의외로 많았다는 것을 여기 와서야 깨닫게 되네요.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