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북, 포격 10분전에 '남한서 쐈다'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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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해 북방한계선 (NLL) 을 무력화하려는 북측과 이를 방치할 수 없는 우리 해군이 마침내 포격전으로 맞붙었다.

지난 11일 우리측의 '충돌식 밀어내기' 공격 이래 긴장의 도를 계속 높여온 북측은 급기야 15일 오전 8시쯤 어선 20척과 함께 경비정 4척, 어뢰정 3척 등을 NLL 남쪽으로 내려보내 일전불사 (一戰不辭)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선박 수나 움직임 등이 전날에 비해 크게 공세적이어서 북측의 선제 발포가 결코 우발적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측 군 수뇌부는 14일 밤까지만 해도 장성급 회담 이후 북한이 침투를 계속하면 어떤 대응작전을 펼쳐야 할 것인지를 숙의했다.

해군 함정을 NLL 부근으로 전진배치하거나 최악의 경우 경고사격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장성급 회담을 지켜본 뒤 다시 얘기하자" 는 분위기였다.

이날 오전 북측의 움직임도 장성급 회담을 앞두고 서해안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쯤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북한은 회담을 35분 앞둔 오전 9시25분 기관포 사격을 개시했다.

이에 대해 차영구 (車榮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북한의 발포는 완전히 계획적인 것" 이라고 규정했다.

장성급 회담이 열리던 10시9분 북측 대표가 "남측이 9시15분 발포해 우리 병사가 죽어가고 있다" 고 발언했으나 북한의 발포는 막상 9시25분 개시됐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객관적으로 봐 사전계획이 없었다면 9시25분의 발포상황이 회담이 개시된 오전 10시 이전에 판문점으로 전달되기는 힘들다는 점도 이유로 지적했다.

합참 관계자는 "서해상의 무력대치가 9일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발적 발포란 상상하기 힘들다" 며 "북한은 유엔측을 협상테이블에서 압박하기 위해 포격전에 나섰을 것" 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그동안 유엔사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장성급 회담 대신 남북한.미국이 참여하는 '3자 군사공동기구' 창설을 주장해 왔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미군과의 직접대화나 3자 군사공동기구 설치의 계기로 삼아 궁극적으로 유엔사 해체→주한미군 철수로 끌어가기 위해 긴장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합참 내부에선 이 때문에 북측의 무력도발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점차 강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반면 포격전을 계기로 이번 사태가 잦아들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도 적지 않다.

북한 스스로도 자신들의 보복공격이 자칫 국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그 경우 결코 유리하지 못한 결과를 빚게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군 및 북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번 포격전만으로도 몇가지 정치.군사적 목적을 달성했다.

서해안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분쟁수역으로 부각시켰고, 한국에 진출하려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등 우리측에 어느 정도 타격을 안겨줬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합참 관계자는 "남북 양측은 일단 1~2일 가량 냉각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며 "북한이 NLL 침범을 자제할 경우 사태는 수습국면으로 들어갈 것" 이라고 관측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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